권력 vs. 정의…루마니아 첫 女총리ㆍ첫 女검찰총장 출신 격돌
신임 던칠러 총리, 반부패법 완화 추진…'부패와 전쟁 지휘' 쾨베시 반부패청장 압박
쾨베시 "보직 해제되지 않는 한 소임 다할 것"
(이스탄불=연합뉴스) 하채림 특파원 = 지난달 29일 루마니아 첫 여성총리가 취임 선서를 마치자 현지 여론의 시선은 자연스레 또다른 '여성 최초'에게로 향했다.
주인공은 루마니아 첫 여성검찰총장을 지내고 반부패청(DNA)을 이끄는 라우라 코드루차 쾨베시(45) 검사다.
DNA는 루마니아에 뿌리 깊은 부패를 척결하고자 2002년 설립한 사법기구다. 한국이 검토하는 '공직자비리수사처'와 같은 개념이다.
청소년 국가대표 농구선수 출신으로 22세에 검사가 된 쾨베시는 33세 때인 2006년 검찰총장으로 파격 발탁됐다. 루마니아에서 여성으로는 최초이자, 역대 최연소 기록이다.
검찰총장 임기를 마친 이듬해부터는 DNA 수장으로서 '부패와의 전쟁'을 진두지휘했다.
그는 재임 후 굵직한 부패수사를 기획하고, 정치 거물을 잇달아 기소하면서 DNA의 신뢰도를 크게 끌어올렸다.
2014년 DNA는 전직 총리, 전직 장관 2명, 의원 5명, 시장 24명을 기소한 데 이어 '제 식구'인 판사·검사도 체포해 90% 이상의 유죄 판결을 얻어냈다.
2015년 6월에는 빅토르 폰타 당시 총리를 문서위조, 자금 세탁, 탈세 방조 등 혐의로 전격 기소, '성역 없는 수사'를 입증했다.
부패 스캔들로 리더십을 상실한 폰타 총리는 그해 10월 말 발생한 나이트클럽 화재 참사로 결국 사퇴했다.
2016년 공개된 여론조사에 따르면 쾨베시 청장은 재임 후 DNA의 국민 신뢰도를 의회의 5배, 가톨릭교회와 동등한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루마니아에서 그는 '정의'(Mrs. Justice)라는 별명으로 통한다.
쾨베시 청장이 권력 1인자 총리까지 기소할 수 있었던 힘은 그의 강직함과 함께 법으로 보장된 DNA의 독립성과 권한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새로 취임한 비오리카 던칠러(54) 총리와 소속 사회민주당(PSD)은 반부패법 완화와 사법체계 개편 강행을 예고했다.
PSD의 실세 리비우 드라그네아 대표 등 다수 정치 거물이 반부패법으로 피선거권과 공무담임권에 제한을 받고 있다.
드라그네아 대표는 1년 전부터 당내 기반이 취약한 의원을 총리로 내세워 반부패법 개정을 시도했으나 여론의 반발에 밀려 지금까지 미수에 그쳤다.
소속 정당으로부터 불신임을 당한 2명의 전임자와 달리 던칠러 총리는 반부패법 개정을 밀어붙일 태세다.
시민사회는 PSD의 사법체계 개편이 DNA의 권한을 축소, '부패와의 전쟁'을 후퇴시킬 것으로 우려한다.
작년 초 수도 부쿠레슈티를 비롯해 루마니아 주요 도시의 광장에는 수만 명이 모여 부패척결 후퇴에 반발했다. 시위대 곳곳에 "쾨베시, 잊지 말아라. 우리가 당신의 정의다"라는 팻말이 보였다.
지난달 새 총리 지명과 함께 부패척결 후퇴에 반대하는 시위도 다시 시작됐다.
던칠러 총리 취임 이튿날 쾨베시 청장은 루마니아 아게르프레스 통신과 한 인터뷰에서 "반부패법 개정은 사법체계와 사회 전반에 파괴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루마니아 언론은 던칠러 정부가 부패와 전쟁의 상징적 인물인 쾨베시를 해임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법무부는 최근 쾨베시의 직무처리를 문제 삼아 감사 절차에 착수했다.
쾨베시 청장은 "법적으로 직무가 정지되지 않는다면 나는 임기가 끝날 때까지 소임을 다할 것"이라며 "조사가 걱정스럽지 않다"고 말했다.
한편 루마니아의 사법제도 개편에 대해 유럽연합이 거듭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고 동유럽권 매체 노비니테가 1일 전했다.
장클로드 융커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지난달 31일 클라우스 요하니스 루마니아 대통령과 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루마니아의회가 작년에 추진한 사법체제 개편안이 원안대로 추진한다면 EU의 감시 프로그램 졸업과 솅겐조약 합류에 문제를 빚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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