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터차 낙마 배경 놓고 설왕설래…'코피 전략' 이견과 무관론도(종합)
외교소식통 "코피전략 이견, 빅터차 내정 철회와 무관한 것으로 파악"
'코피전략'에 대한 행정부 내 의견 분열로 낙마했다는 해석도
"백악관이 빅터 차를 유령 취급"…미 "인선절차 신속진행" 입장
(워싱턴=연합뉴스) 송수경 특파원 권혜진 기자 = 이른바 '코피 전략'으로 불리는 미국의 대북 제한적 타격에 반대해온 빅터 차 주한 미국 대사 내정자의 낙마 배경을 놓고 설왕설래가 이어지고 있다.
1일(현지시간) 워싱턴 외교가와 미 언론에 따르면 워싱턴포스트(WP)는 전날 차 내정자에 대한 내정 철회를 전하며 "차 내정자가 '코피 전략'을 놓고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관리들에게 우려를 제기한 뒤 더는 지명을 기대할 수 없게 됐다"고 보도했다.
차 내정자 역시 같은 날 WP에 "나는 이 행정부 내 한 직위의 후보로 고려되던 시기에 이런 견해를 피력했었다"며 자신의 낙마가 '코피 전략' 반대와 무관치 않음을 시사했다. 차 내정자는 적어도 연초부터 낙마 가능성을 예상했으며 WP 기고 역시 이 보도가 나오기 며칠 전 보냈다고 한다.
영국 신문인 파이낸셜타임스(FT)도 차 내정자가 유사시 미국인 대피와 관련한 백악관과의 견해차로 낙마했다고 전했다.
백악관은 한국 언론에는 차 내정자의 내정 철회 사실만 확인할 뿐 그 배경에 대해선 뚜렷한 설명을 하지 않고 있다. 주미 한국 대사관 등도 정확한 낙마 사유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워싱턴 외교가에선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간 대화 무드가 조성되는 것과는 달리 백악관을 중심으로 '평창 이후'를 거론하며 대북 최대 압박을 계속하되 군사옵션도 배제하지 않겠다는 움직임을 보여준 게 사실이다.
이 과정에서 NSC 측은 임명동의(아그레망) 절차가 진행 중이던 시점을 전후로 해 차 내정자와 아예 연락을 끊으며 '유령 취급'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에서 차 내정자는 얼마 전 일부 전 주한 미국 대사 등 지인들에게 전화해서 "지명 절차가 늦어지고 있는데 어떻게 된 것인지 모르겠다. 답답하다"는 취지로 심정을 토로한 바 있다고 복수의 외교가 관계자들이 전했다.
CNN 방송은 "트럼프 행정부가 지명준비 절차에 돌입한 뒤 차 전 내정자에게 한국 내 미국인 대피 문제를 포함, 선제공격을 둘러싼 외교적 노력을 관리해나갈 준비가 돼 있느냐고 물었고, 이에 대해 차 내정자는 선제공격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면서 "당시 한국 정부의 아그레망 절차가 진행 중이었음에도 불구, 이후 백악관은 침묵 모드로 들어갔다"고 익명의 관계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외교전문가인 조너선 크리스톨 세계정책연구소(WPI) 연구원도 CNN 기고문에서 "백악관 관계자들이 액면 그대로 차 내정자의 전화를 콜백해주는 일을 중단하는 등 그와 연락을 끊으며 유령 취급을 하기 시작했다"며 "그에 대한 유령 취급은 시기적으로 전쟁에 대한 이야기가 고조되는 상황에서 이뤄졌으며, 백악관이 그를 없는 사람 대하듯 한 것은 나쁜 전조였을 뿐 아니라 위험한 일이었다"고 밝혔다.
그런가 하면 '코피 전략'을 둘러싼 이견이 차 내정자의 낙마의 직접적 배경이 아니라는 말도 워싱턴 외교가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워싱턴의 한 외교소식통은 "여러 경로를 통해 알아본 결과 미 언론 등에서 보도된 것과 달리 제한적 타격을 가하는 '코피 전략'에 대한 미 행정부와 차 내정자의 입장 차이와 이번 내정 철회는 무관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고 전했다.
반면 CNN은 '코피 전략'을 둘러싼 트럼프 행정부 내부의 의견 분열이 차 내정자의 낙마와 관련이 있다는 해석을 전했다.
CNN에 따르면 '코피 전략'이 수십만 명의 목숨을 위험에 빠뜨리는, 재앙적인 전쟁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는 차 내정자의 시각은 평화적 해법을 모색하는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이나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과 결을 같이 한다.
하지만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군사 공격을 대북 옵션 중 하나로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중앙정보국(CIA) 출신인 브루스 클링너 선임연구원은 이날 CNN 인터뷰에서 차 내정자 낙마 사태와 '코피 전략'의 관련성에 대해 "정부 내에서 분열이 있는 것 같다"고 귀띔했다.
현재로썬 맥매스터 보좌관의 목소리가 커지며 틸러슨-매티스 라인이 다소 밀리는 형국이지만 '제한적 공격'을 정당화하려는 맥매스터 보좌관의 시도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높다.
구체적인 이점이 불분명한 가운데 전략적 오판으로 북한 측 대응이 격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다.
다만 워싱턴포스트(WP)의 조시 로긴 칼럼니스트는 '코피 전략'이 현실화할 가능성을 낮게 봤다.
공교롭게 차 내정자의 낙마 소식에 트럼프 대통령이 국정연설에서 대북 강경기조까지 재확인하면서 한미 양국 지식층이 깜짝 놀라는 분위기이나, 트럼프 행정부 관계자들과 전문가들은 그 이면에 좀 더 복잡한 사정이 있다고 전했다는 것이다.
로긴은 내부 관계자들의 발언을 인용, "협상 조건을 만들겠다는 목적으로 최대 압박을 가한다는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정책은 지난해 봄 대통령이 승인한 이래 변동이 없다"며 '코피 전략'이 가까운 시일에 실현될 가능성은 없다고 밝혔다.
현 정부 고위 관료도 "북한의 도발 중단이 상당 기간 지속되면 다자 회담 형태로 북한과 대화할 가능성을 열어둔다는 정책"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은 물론 맥매스터 보좌관과 그를 보좌하는 매슈 포틴저 국가안전보장회의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도 이 같은 안을 지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차 내정자의 후임과 관련해 미 정부 측은 우리 정부에 양해를 구하면서 "최대한 빨리 후임자를 물색해 관련 절차가 신속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빅터 차 내정자의 경우보다 빠르게 진행되도록 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차 전 내정자의 후임으로는 지난해 상반기 차 전 내정자와 함께 하마평에 올랐던 월터 샤프 전 주한미군 사령관을 비롯해 미 싱크탱크인 헤리티지 재단의 대북전문가 브루스 클링너 선임연구원 등이 거론된다.
일각에서는 대북 강경파인 존 볼턴 전 유엔 주재 미 대사와 함께 마크 내퍼 주한 미국 대사 대리의 승진 기용 가능성도 흘러나오고 있다.
또 다른 외교소식통은 "미 정부가 후임 후보군에 대한 검토작업에 이미 들어간 것으로 알고 있다"며 "아직 윤곽이 알려지지는 않은 상황"이라고 전했다.
<YNAPHOTO path='PYH2018013151040001301_P2.jpg' id='PYH20180131510400013' title='주한 미국 대사에서 낙마한 빅터 차' caption='(서울=연합뉴스) 차기 주한 미국 대사에 내정됐다가 갑작스럽게 낙마한 빅터 차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 사진은 지난해 1월 대한상공회의소에서 '트럼프시대, 한국경제의 진로'를 주제로 열린 세미나에서 강연하는 빅터 차. 2018.1.31 [연합뉴스 자료사진]
<br>photo@yna.co.kr'>
hanksong@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