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블랙리스트 받고 권력에 면죄부 준 인권위…재탄생해야"

입력 2018-02-01 14:12
"靑 블랙리스트 받고 권력에 면죄부 준 인권위…재탄생해야"

혁신위, 현병철 위원장 시절 '논란 사건' 사실확인 결과 발표

"무자격 위원장·위원 다시는 없어야…투명한 인선절차 필요"



(서울=연합뉴스) 이효석 기자 = "과거 범죄를 단죄하지 않는 것은 미래 범죄에 용기를 주는 것입니다."

국가인권위원회 혁신위원회가 최종 권고안을 발표한 1일 혁신위원을 맡았던 명숙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는 프랑스 작가 알베르 카뮈의 말을 인용해 인권위에 철저한 과거 반성과 혁신을 통한 재탄생을 당부했다.

이날 혁신위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임명한 현병철 전 인권위원장이 재직한 2009∼2015년 인권위 독립성이 크게 훼손돼 인권위가 권력의 눈치를 보거나 권력기관의 인권침해에 면죄부를 주고 심지어는 인권침해를 자행하기도 했다"고 비판했다.

현 전 위원장은 인권에 관한 아무런 경력이 없음에도 2009년 위원장으로 임명됐고, 2012년에는 국회 반대에도 재임명까지 강행돼 논란을 빚었다. 재직 기간 인권위는 기능과 권한이 축소됐고, 인사 문제 등으로 내홍이 끊이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혁신위는 현 전 위원장 재임 때 대표적인 독립성 침해 사례로 2012년 불거진 '청와대 인권위 블랙리스트' 사건을 꼽았다.

당시 '뉴스타파'는 "2009년 10월 청와대 행정관이 새로 임명된 인권위 사무총장을 만나 불이익을 주거나 관리해야 할 인권위 직원 블랙리스트를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혁신위는 브리핑에서 "직원 면담과 당시 사무총장 비망록 등으로 사실관계를 파악했다"면서 "확인 결과 인권위 블랙리스트는 사실이었으며, 명단의 4명은 확인이 됐고 6명가량 더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인권위의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시민단체 출신이거나 2008년 촛불집회에 관한 인권침해 사안을 조사한 조사관들이 블랙리스트였다"면서 "당시 사무총장은 비망록에 '청와대·국정원·경찰 등에서 관계자가 찾아와 긴밀한 협조를 요청했다. 도저히 이 정부와 함께 일할 수 없는 직원에 관한 자료를 제공하기도 했다'고 기록했다"고 설명했다.

혁신위는 "당시 인권위는 언론 보도 후에도 최소한의 사실관계 파악도 하지 않은 채 유감 표명 정도에 불과한 입장 발표만 했다"면서 "현재의 인권위가 진상을 조사하고 보고서로 공표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2011년 1월 장애인활동가 우동민씨가 인권위 청사 점거농성에 참여했다가 숨진 사건은 인권위가 인권침해를 자행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혔다.

당시 중증장애인 활동가들이 현병철 위원장 사퇴를 요구하며 점거농성을 벌이자 인권위 측이 활동보조인 출입을 제한하고 전기·난방 공급을 끊었으며, 우씨는 고열과 복통을 호소하다 숨졌다.

혁신위는 "이 사건은 인권전담기구로서의 역할과 인권위법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인권침해 행위이자 인권옹호이자 탄압"이라면서 공식 사과와 진상조사 등을 권고했다.

이성호 인권위원장은 지난달 우씨 7주기 추모행사를 찾아 인권침해를 인정하고 유가족에게 사과했다.

혁신위는 2009년 '용산 참사' 당시 경찰 과잉진압 논란이 불거졌음에도 인권위가 1년이 넘도록 권고는 물론 의견 표명조차 하지 않다가 뒤늦게 관련 재판부에 의견을 제출하는 데 그쳤던 것 역시 독립성 훼손의 사례라고 지적했다.

2015년 유엔자유권규약위원회 심의가 예정돼 인권위가 국내 인권 상황에 관한 쟁점목록을 제출해야 했는데 유영하 당시 상임위원이 세월호 참사와 이주민 인권 등에 관해 상당 부분을 삭제했던 사건에 관해서도 혁신위는 유사 사례 재발방지를 당부했다.

혁신위는 검찰이 광우병 논란을 보도한 MBC PD수첩 제작진을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한 데 대해 2009년 인권위가 의견 표명을 하지 않은 것, 2009년 국정원 기무사 사찰 논란과 2010년 국무총리실 민간인 사찰 논란을 조사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혁신위는 독립성 훼손 재발방지를 위해서는 인권위원 인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자격 기준과 결격 사유 구체화, 시민사회가 참여하는 민주적 임명 절차 마련, 대법원장 추천 몫 폐지 등을 권고했다.

하태훈 혁신위원장(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은 "인권위원 추천 및 임명 절차가 투명해 다원성과 다양성이 확보돼야 한다"면서 "인권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없는 무자격자가 위원장이나 위원으로 선임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hy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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