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열심히 사느라 고생했는데"…화마에 숨진 안타까운 부부(종합)
두 아들 대피시키고 하반신 마비 아내 구하려다 부부 함께 숨져
기초생활보장수급자 처지…농사지으며 어렵게 살아 주위 안타까움 더해
(춘천=연합뉴스) 박영서 기자 = "집에 불났어요. 빨리 오세요. 빨리요."
지난밤 11시 20분께 강원도 소방본부 종합상황실로 다급한 목소리의 전화가 걸려왔다.
어린아이들 목소리였다. 화마(火魔)에 휩싸여 타들어 가는 집을 보면서 '집에 불이 났으니 빨리 와서 꺼달라'며 울부짖었다.
불이 난 곳은 춘천시 북산면 오항리의 한 주택. 춘천 도심에서도 40㎞나 떨어져 차로 1시간가량 걸리는 오지마을이다.
청평사 주차매표소부터 오항리까지 약 10㎞ 구간은 제설작업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을 정도로 외부에서 접근하기도 힘든 곳이다.
매표소 직원이 외곽도로를 통해 들어가는 다른 길을 추천할 정도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신고 20여분 만에 소방차가 도착했을 당시 불길이 가장 센 '최성기'였다.
화재 발생 이튿날인 1일 오전 0시 37분께 불은 완전히 꺼졌으나 컨테이너에 시멘트 벽돌을 붙여 지은 집은 모두 불에 타 폭삭 주저앉아버렸다.
집 안에서는 김모(55)씨와 그의 아내 안모(40)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한 명은 출입문에서, 한 명은 주방에서 발견됐다. 워낙 불에 많이 탄 탓에 누가 남편이고, 아내인지 알아보기 어려웠다.
경찰과 소방 관계자 말을 종합하면 한 가지 사실은 분명한듯했다.
남편 김씨가 불이 났을 당시 아이들을 먼저 밖으로 대피시킨 뒤 몸이 불편한 아내를 구하기 위해 불길에 뛰어들었다가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것이다.
부부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초등학교 5·6학년 생인 두 아들을 남겨둔 채 세상을 떠났다.
아이들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과 주민 등에 따르면 김씨 부부는 이곳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주택 근처에서 벼, 콩, 고추 등 작물을 재배하며 두 아이를 키운 부부에게 불행은 예고 없이 찾아왔다.
아내 안씨가 3∼4년 전 논두렁 길을 걷다가 넘어진 게 원인이 돼 하반신에 마비가 온 것이다.
아내가 움직이지 못하게 되면서 가장인 김씨가 짊어진 짐의 무게는 더 늘어났다.
농사지어 버는 돈으로는 매달 500만∼600만원에 달하는 병원비와 약값, 간호인 비용 등을 감당하기에 벅찼다. 아내는 재활병원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다.
김씨는 아내의 대소변을 모두 받아내야 했고,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아이들도 키워내야 했다.
기초생활보장수급자로 주거비와 의료비를 지원받았으나 모두 감당해내기엔 버거웠다.
김씨 부부 집과 멀리 떨어지지 않은 북산면사무소 인근에 노모(76)가 있었으나 면사무소에서 끼니를 챙겨줄 정도로 형편은 넉넉지 않았다.
40여 가구에 불과한 작은 마을에서 숟가락 숫자까지 훤히 꿰고 있을 정도로 가까이 지낸 이웃들이 그런 김씨 부부 사정을 모를 리 없었다.
그런데도 춘천 태생인 남편 김씨는 북산면 의용소방대원으로만 20년 가까이 지내며 마을에 무슨 일이 있으면 집안일도 잠시 미루고 달려왔던 고마운 이웃이었다.
주민들은 하나같이 "정말 그 누구보다 열심히 살려고 고생도 많이 하고 노력했던 사람들"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이웃이자 북산면 의용소방대장인 신양섭(62)씨는 "불이 난 것을 보고 달려왔을 때 이미 불길이 너무 세서 사람이 안에 들어갈 수 없는 상태였다"며 "아이들은 막 도착한 119대원들을 붙잡고 '아빠, 엄마가 아직 안에 있다. 제발 살려달라'며 애원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신씨는 "사회적으로 많은 지원이 필요했던 사람들인데 이런 일이 생겨 너무나 안타깝다"며 "남겨진 아이들 상황이 너무 어려운데 어떻게 도움을 받을 방법이 없겠느냐"고 한숨을 내쉬었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이날 오전 9시부터 화재원인을 밝혀내기 위한 합동감식에 나섰다.
주택 기본 골격이 컨테이너인 탓에 전기적인 문제 혹은 부엌에 있던 난로가 원인이 아닐까 추정하지만 정확한 원인은 아직 나오지 않은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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