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과 고향 노래한 지영환 시집 '별처럼 사랑을 배치하고 싶다'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명왕성 대변인'을 자처하는 지영환 시인이 별과 고향을 노래한 새 시집 '별처럼 사랑을 배치하고 싶다'(민음사)를 내놨다.
첫 시집 '날마다 한강을 건너는 이유' 이후 11년 만에 내는 두 번째 시집이다.
이번 시집의 제목으로 내건 별을 비롯해 태양계와 명왕성은 시집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다. 시인이 관찰하는 태양계는 우리가 세속 도시에 살면서 망각해 버린 고향의 흔적이며 태초에 잃어버린 정신의 근원이다. 별은 진실, 자칫 나태해지거나 타락하기 쉬운 삶에서의 변함없는 지표다.
시인은 밤하늘의 별을 헤아리며 도시의 일상에서 자꾸 잊혀 가는 고향의 아름다움, 순수의 세계를 소환한다. 고향인 전남 고흥에서 보낸 어린 시절, 어머니와 아버지, 오랜 가계도를 떠올린다.
"지난해 겨울/고흥에서 올라온 늙은 호박/어머니 보약재로 봐 두었는데/한 해를 넘기고 말았다./내 마음처럼 썩은 늙은 호박/봄 화단에 몰래 묻었다./(중략)/세상에 난출하던 호박 덩굴손이 붙잡은 것은/결국 호박이었다. 아마도/자란다는 것은 그런 것인가 보다./호박 한 덩이는 외숙모에게 보냈고/어머니 생각이 썩지 않도록/한 덩이는 눈에 잘 띄는/장독에 올려놓았다./내 눈에서 별들이 자란다." ('별들이 자란다' 중)
"모이고 흩어진다. 빛은 산란한다. 저것이 별에서 온 것이라면 아마도 모든 별은 산란하고 있는 중일 것이다. 모이고 흩어진다. 우리가 배워 온 것들이 거기에 있었다. 누군가는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진다. 그걸 사랑이라고 한다지. (중략) 어느 날 그래서인지 몰라도 어떤 배치는 비기도 해. 명왕성은 134340 번호를 부여받고 태양계에서 퇴출되었어. 태양계 마지막 행성의 위치는 사실상 비게 된 거야. 아무 일도 아니지만 그런 일이 중력을 가지게 되기도 하지. 아마도 그게 사랑이 아닐까." ('별처럼 사랑을 배치하고 싶다' 중)
고향으로 돌아간 시인의 눈은 '고흥반도', '고흥나로우주센터', '나로도 은갈치', '고흥 유자'를 노래하다 소록도까지 향한다. '소록도의 두 수녀'는 소록도에서 한 평생을 한센인들을 돌보는 데 바친 마리안느와 마가렛 수녀를 위한 헌시다.
"43년 소록도 천막을 새벽에 접은 두 할매/편지 한 장 남긴 채 정든 집을 빠져나왔다./소록도 집집마다 편지 한 통이 도착한다./두 할매 아주 떠난 거야?/소록도 사슴 슬픔에 빠졌다./이제 늙어 짐이 되고 싶지 않다./치매로 요양원에서 지내는 마가렛 피사렛(Margareth Pissarek·82)/대장암 천식 폐렴으로 투병 중인 마리안느 스퇴거(Marianne Stoeger·83)" ('소록도의 두 수녀' 중)
문학평론가 오태호는 이 시집의 해설에서 "시인은 고향과 생물과 일상과 시간들의 궤도를 오래도록 돌고 있는 태양계 행성에 해당한다. 그리고 그 행성은 목성이나 혜성, 명왕성 등으로 변주되면서 소우주의 일부가 되어 우리 시대의 상징계와 상상계를 관통하며 진실을 들춰내어 태양계의 비밀을 공개하는 소중한 보물이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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