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 폭로' 여검사 조직문화 고발…성폭력·차별로 점철
"위계서열 속 언어폭력, 불투명한 인사"…소설 형식 소개글
(서울=연합뉴스) 안 희 기자 = 법무부 고위 간부의 성추행 의혹을 폭로한 여검사는 검찰 내부망에 올린 글에서 폐쇄적인 조직문화에 깊이 자리 잡은 성차별과 언어폭력, 부조리한 인사 관행 등을 고발했다.
법무부와 검찰이 30일 성추행 의혹 조사에 착수하는 동시에 이 같은 조직 내부의 구조적 문제를 쇄신하기로 공언한 만큼 폭로 글에서 언급된 검찰 문화의 실태에도 관심이 쏠린다.
법조계에 따르면 성추행 의혹 피해자로, 사건을 고발한 창원지검 통영지청 서지현 검사는 전날 내부망인 이프로스에 2010년 안태근 전 검사장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는 증언과 함께 본인이 작성한 여러 개의 글을 첨부했다.
첨부 글에는 조직 내에서 목격한 부조리한 일상의 단면들이 소설 형식을 빌려 소개됐다.
◇ '나랑 자자' 비일비재한 성폭력…술자리 문화와 상관관계
서 검사는 형사·공안·특수·공판부 등 검찰청마다 부서 단위로 가동되는 조직에서 술자리, 회식 등을 통해 숱하게 경험한 성폭력·언어폭력에 관해 썼다.
서 검사는 글에서 "부장검사가 회식자리에서 술에 취해 여자(서 검사)의 손을 주물러댈 때, 왜 다들 아무렇지도 않게 침묵하는 것일까' 한참을 생각해야만 했다"고 말했다.
글에는 또 "회식이 끝나고 돌아가는 길에 '너는 안 외롭냐? 나는 외롭다. 나 요즘 자꾸 네가 이뻐 보여 큰일이다'라던 E선배(유부남이었다), '누나 저 너무 외로워요, 오늘은 집에 들어가기 싫어요, 저 한 번 안아줘야 차에서 내릴 거예요'라고 행패를 부리던 F후배(유부남이었다)에게나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랫입술을 꾹 깨무는 것뿐이었다"고 적혀 있다.
또 "'에고 우리 후배 한 번 안아보자'며 와락 껴안아대던 G선배(유부남이었다)나 노래방에서 열심히 두드린 탬버린 흔적에 아픈 손바닥을 문지르고 있던 여자(서 검사)에게 '네 덕분에 도우미 비용 아꼈다'고 내뱉던 부장이나 '잊지 못할 밤을 만들어 줄 테니 나랑 자자' 따위 말을 지껄이던 H선배(유부남이었다)' 따위가 이따금 있기는 하지만…"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언어폭력은 업무 중에도 발생했다고 서 검사는 말했다.
만삭 상태에서 변태 성폭력 사건을 조사하던 자신에게 한 부장검사는 "여성들이 나이트를 갈 때는 2차 성관계를 이미 동의하고 가는 것이기 때문에 강간이 아니다"라고 말했고, '내가 벗겨봐서 아는데'라는 식으로 강간 사건에 유달리 관심을 보이는 부장검사 앞에서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는 내용도 글에 담겼다.
서 검사는 "부장과 주말이면 '좋은 곳'을 다녀온 남자 선배들은 월요일 아침이면 사무실에 모여 '부장은 왜 그 여종업원 속옷을 머리에 쓰고 있었냐'는 등의 얘기를 하며 낄낄거렸다"고 회고했다.
◇ '너는 남자의 50%야' 폭력적 언어 속 성차별
검찰 내 남성들의 인식에 자리 잡은 편견과 차별은 검사의 일상에서도 폭력적 언어로 드러난다고 서 검사는 지적했다.
그는 "회식에서 부장검사는 '나는 여성은 남성의 50프로라고 생각한다, 너는 여기 있는 애들 50프로야. 그러니까 2배 이상 열심히 해'라고 말했고, '옳으신 말씀이야'라던 바로 윗선배의 모습이 더욱 폭력적으로 느껴졌다"고 적었다.
해병대 출신의 한 부장검사는 식사 자리에서 별안간 "나는 술 안 먹는 검사는 검사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대생을 싫어한다. 나는 여검사를 싫어한다. 너는 내가 싫어하는 것을 다 갖췄으니 완전 악연 중에 악연이다. 너 검사 얼마나 하는지 지켜보겠다"라고 독설을 퍼붓기도 했다고 서 검사는 적었다.
얼굴이 둥글둥글하고 눈이 작던 부장검사는 "검사는 너처럼 공주 같으면 안 돼"라고 했고, 그럴 때마다 무엇을 잘못했는지 한없이 생각해야 했다고 서 검사는 말했다.
서 검사는 글에서 "'야 너는 여자애가 무슨 발목이 그렇게 굵냐'는 소리를 뱉어대던 B선배나 여자가 있는 자리에서 틈만 나면 음담패설을 늘어놓던 C선배나, 웃으면 '여자가 그렇게 웃음이 헤퍼서 쓰냐'고 나무라던 D선배"라고 적으며 성차별과 언어폭력 사례를 나열했다.
한 상관은 "올해부터 여검사가 백 명이 넘었다니, 우리 회사 앞날이 큰일이다"라며 혀를 끌끌 차기도 했다고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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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계서열과 불투명한 인사
서 검사는 위계서열이 엄격한 검찰 조직에서 실적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불투명한 인사 때문에 업무능력 외의 요소가 여성 검사의 발목을 잡는다고 지적했다.
글에는 서열을 중시하는 수사부서의 식사문화를 소개한 부분이 나온다. 그는 "밥을 먹기 전에는 신속하게 숟가락, 젓가락과 티슈를 세팅하고 모든 컵에 물을 따라 서열순대로 상관과 선배 앞에 대령하고, 행여나 비워진 접시나 물컵이 있는지 계속해서 살펴보는 것이 말석이라서 하는 것인지, 여성이기 때문인지 잘 판단이 서지 않았다"고 썼다.
또 "길을 걸을 때도 산을 오를 때도 단 반걸음이라도 윗사람보다 앞서지 않도록 수시로 애써 속도를 조정하며 서열순대로 걸어가는 모습들이 영 어색했다"는 내용도 있다.
그는 인사 문제도 거론했다. 본인의 업무성과가 여러 수상경력으로 인정받았지만 정작 인사 결과는 기대와 달랐고 남자 검사에게 좋은 보직이 돌아갔다는 주장이다.
글에는 "한 번 받기도 어렵다는 장관상을 2번 받고, 몇 달에 한 번씩은 우수사례에 선정돼 표창을 수시로 받아도 그런 실적이 여자의 인사에 반영되는 일은 별로 없었다"고 나온다.
또 "여자(서 검사)의 실적이 훨씬 좋은데도 남자 선배가 우수검사 표창을 받는다거나, 능력 부족으로 여자가 80건이나 재배당받아 사건을 대신 처리해줘야 했던 남자 후배가 꽃보직에 간다거나 하는 일이 종종 일어날 때도 여자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서 검사는 안 전 검사장의 성추행을 부당하다고 얘기하려고 할 때도 "검사 생활 더 하고 싶으냐, 오래 하고 싶으면 조용히 상사 평가나 잘 받아라"라는 반응뿐이었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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