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 내각 '작심 질책'…"대통령 아닌 국민 바라봐야"

입력 2018-01-30 17:48
수정 2018-01-30 17:52
문 대통령, 내각 '작심 질책'…"대통령 아닌 국민 바라봐야"



"공무원이 혁신 주체가 되지 못하면 혁신의 대상 될 수도 있어"

연이은 안전사고·정책 혼선·채용비리 등 언급하며 내각 질타

(서울=연합뉴스) 노효동 김승욱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30일 내각을 필두로 한 공직사회 전반을 향해 "혁신의 주체가 되지 못하면 대상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하라"며 작심하고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국민들이 '정말 달라졌다'고 체감할 수 있도록 정부부터 과감히 환골탈태 식의 변화와 혁신에 나설 것을 강도높게 주문한 것이다.

이날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장·차관 워크숍에서다. 취임후 8개월만에 처음으로 열린 워크숍은 새해 업무보고를 종합 정리하는 차원에서 마련된 것이었지만, 내용상으로는 문 대통령이 내각을 '따끔하게' 질책한 자리였다.

정권 출범 때부터 시작된 전방위적 개혁 드라이브가 아직도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수준의 성과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는 판단 하에 일종의 '기강잡기'에 나선 것으로 볼 수 있다.

문 대통령은 특히 과거 공식사회의 병폐를 상징해온 '복지부동' '무사안일' '탁상행정'이라는 수식어를 동원하며 과감한 혁신을 강조했다.

'국정운영의 중심은 국민'이라는 문재인 정부의 국정철학과 달리 과거를 답습하는 구태를 보이는 공무원 조직에 실망감을 표출하는 동시에 강한 경고음을 담은 '옐로 카드'를 날린 것으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이 이처럼 내각을 강도높게 질책한 데에는 최근 잇따라 발생한 대형 안전사고가 촉발점이 된 것으로 풀이된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을 최우선 가치로 내세워온 문 대통령으로서는 '안전 관리' 영역에서 심각한 문제가 고스란히 노출되는 상황을 용납할 수 없다는 인식이 강한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이날 밀양화재 사고 희생자를 추모하는 묵념으로 워크숍을 시작하고, 모두발언에서 가장 먼저 "최근 재난 사고들을 보면서 정부를 맡은 사람으로서 모두 참담한 심정이었을 것"이라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일이 정부가 하는 모든 일의 시작임을 다시 한 번 명심하라"고 촉구했다.

문 대통령은 특히 "정책의 우선순위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국민의 삶을 지키는 것을 정부의 최우선 역할로 삼아야 할 것"이라며 "2월에 있을 국가안전대진단부터 과거의 방식을 답습하지 말고 국민의 안전을 책임진다는 자세로 철저하게 시행하라"고 강조했다.

국민생명지키기 3대 프로젝트를 발표한 지 불과 3일 만에 밀양 화재사고로 38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점을 뼈아프게 받아들이고, 구호에 그치는 대책이 아니라 실효적인 대책을 마련하라는 주문으로 풀이된다.

이런 기조 하에서 문 대통령은 '국민'을 최우선 순위에 두고 정책운용의 틀도 근본적으로 새판짜기할 것을 내각에 주문했다. 문 대통령은 "장·차관 여러분이 바라봐야 할 대상은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이라며 "국민이 요구하는 것이 무엇이고, 현장에서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를 섬세하게 살피면서 모든 정책을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특히 정책 추진과정에서 '공론화'의 중요성을 유독 강조했다. 정책 수요자인 국민들을 충분히 설득하고 공감을 얻어가는 '과정'이 충실해야 의미있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게 문 대통령의 인식으로 보인다. 전문가에게 용역을 맡기거나 형식적인 토론회만으로 여론을 수렴 절차를 마무리하는 기존 관행을 타파할 것을 질책한 것이었다.

문 대통령은 "정책의 당위와 명분이 있다 하더라도 현장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일방적으로 추진한다면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결과가 되기 십상"이라며 "국민들 간의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정책의 경우 충분한 설득과 공감의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각별히 명심해주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정부 혁신의 방향 역시 '국민이 체감하는 혁신'에 방점을 찍었다. "우리끼리 하는 혁신이 아니라 국민이 바라는 혁신이어야 한다"며 "혁신의 방향이 국민이어야 한다는 말"이라는 게 문 대통령의 강조점이다. 국민 실생활과 유리된 '보여주기'식 혁신이 아니라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고 평가해주는 혁신이어야 한다는 메시지로 볼 수 있다.

문 대통령은 그러면서 내각을 향해 "문재인 정부라는 한 배를 탄 공동운명체"라며 '일체감'있는 국정운영을 강조했다. 부처간에 혼선이 빚어지거나 엇박자를 내는 모양새가 연출될 경우 정부 전부에 대한 기대와 신뢰도가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이는 최근 부처 간 엇박자를 낸 가상화폐 대책과 부처 내 정책 혼선을 빚은 영유아 영어 교육 정책을 지적한 것으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은 "모두가 한 팀이라는 마음가짐으로 부처간 칸막이를 없애고 충분히 소통하고 협의하는 자세를 가져달라"고 주문했다.

문 대통령은 그러면서 정부와 국민간의 '직접 소통'을 강화할 것을 주문했다. 문 대통령은 "홍보는 상품의 단순한 포장지가 아니라 친절하고 섬세한 안내서가 돼야 한다"며 국민과의 소통을 강조했다. 아무리 훌륭한 정책도 국민에게 제대로 알려야 그 진가를 발휘할 수 있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으로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자영업자를 지원하기 위해 일자리안정자금을 도입했으나, 이달 일자리 안정자금 신청률이 0.7%에 그쳤다. 문 대통령은 정책을 국민에게 제대로 알리기 위해 국민의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고 직접 발로 뛸 것을 주문한 것으로 해석된다.

문 대통령은 이날 워크숍에서 '채용비리' 근절에 대한 강력한 의지도 표명했다.

전날 발표한 공공기관 채용비리 특별점검 후속조치를 언급하며 "우리 사회의 공정성을 무너뜨렸다는 점에서 큰 실망감을 줬다. 우리 사회에서 채용비리를 비롯한 반칙을 근절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특히 "각 부처 장관은 적어도 채용비리 만큼은 완전히 뿌리 뽑겠다는 비상한 각오를 가지고 후속 조치와 함께 투명하고 공정한 채용 제도의 정착을 위해 노력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정부는 전날 공공기관 채용비리 특별점검 결과를 발표하고 채용비리에 연루된 것으로 드러난 390명을 즉시 해임·업무배제·퇴출하기로 했다.

우리 사회의 공정성을 무너뜨리는 공공기관 채용비리는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문재인 정부의 정체성에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점에서 문 대통령이 근절을 지시한 것으로 해석된다.

문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취임 초기와 비교해볼 때 확연한 '뉘앙스'의 차이를 보여줬다는 분석이 나온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6월 강경화 외교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는 자리에서 "외교부 공무원들이 개혁의 대상인 것은 아니다. 개혁의 주체가 돼서 외교부를 바꿔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비록 외교부 공무원을 지칭해서 한 발언이나, 공무원 조직에 대한 문 대통령의 인식이 '개혁의 주체'에서 차츰 '개혁의 대상'쪽으로 변화해 가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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