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아프리카판 쿨러닝' 나이지리아 여자 봅슬레이팀의 도전사
2016년 팀 결성, 2017년 1월 첫 공식대회 출전…평창서 새 역사 만들기
(서울=연합뉴스) 김지헌 기자 = 평창의 얼음 트랙에서는 역대 동계올림픽 사상 최초로 '뜨거운 대륙' 아프리카 국가의 깃발을 단 봅슬레이가 질주한다.
그 주인공인 나이지리아 여자 봅슬레이 국가대표 세운 아디군(31), 은고지 오누메레(26), 아쿠오마 오메오가(26)를 미국 ESPN이 30일(한국시간) 조명했다.
나이지리아계 미국인인 세 사람은 2016년 9월 14일 처음 만나 '아프리카 최초 동계올림픽 봅슬레이 출전'이라는 원대한 계획을 세웠다.
이들은 동계 썰매 종목 선수들이 으레 그렇듯 모두 육상선수 출신이었다. 팀 리더 격인 아디군은 2012년 런던하계올림픽에 나이지리아 대표로 허들에 출전하기도 했다.
육상과 달리 봅슬레이 경험은 거의 없었던 이들이지만, 아디군은 "우리는 그날 2018년 동계올림픽에 출전하기로 결심했다"고 떠올렸다.
도전은 쉽지 않았다. 처음에 세 사람은 미국 휴스턴에 모여 재료상에서 사 온 자투리 목재로 그림을 봐가면서 직접 만든 나무 썰매를 밀며 스타트를 연습했다.
나무 썰매의 이름은 영국 이민자들이 미주대륙에 최초로 도착할 때 타고 온 배 '메이플라워'(Mayflower)와 비슷한 '매이플라워'(Maeflower)로 지었다.
오메오가는 "우리는 제로(0)에서 시작했다"고 했고, 오누메레는 "봅슬레이는 기본적으로 쓰레기통에 들어가 언덕을 굴러 내려오는 것과 비슷했다"고 묘사했다.
이들은 최소 3개의 다른 트랙에서 열리는 공식 대회에 출전해 5차례 이상 완주해야 올림픽 출전권을 얻을 수 있었다.
첫 도전은 2017년 1월 9일 미국 유타주 파크시티에서 열린 노스아메리칸컵 봅슬레이 대회였다. 당시 오메오가는 긴장한 나머지 바지를 거꾸로 입기도 했다.
ESPN은 당시 대회 결과에 대해 "첫 번째 공식주행은 좀 통통 튀기는 했지만, 끝까지 내려왔고, 두 번째 주행은 글쎄…"라며 말을 흐렸다. 이때 이들은 두 차례 경주 모두 꼴찌인 11위를 차지했다.
지난해 11월 캐나다 휘슬러에서 열린 대회에서는 '재앙'을 겪었다. 추운 날씨와 안갯속에서 경주를 펼치며 오누메레는 골반을 다쳤고 아디군의 헬멧 3개가 박살 났다. 선수들은 "휘슬러는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출전권을 따내려면 여기서 멈출 수는 없었다. 캐나다 캘거리에서 다시 대회에 나선 대표팀은 "트랙을 내려가거나 실패하거나, 둘 중 하나였다"고 떠올렸다.
캘거리에서 두 차례 경주를 마친 대표팀은 결승선 통과 후 나이지리아 국기를 몸에 휘감고 얼싸안으며 환호했다고 한다. 아프리카 국가의 첫 동계올림픽 봅슬레이 출전이 결정된 순간이었다.
ESPN은 "30년 전 또 다른 예상 밖의 봅슬레이팀이 올림픽을 놀라게 했다"며 "자메이카 남자 봅슬레이 대표팀이 1988년 캘거리동계올림픽에 출전했고 이는 영화 '쿨러닝'으로 남았다"고 썼다.
이어 "나이지리아 여자 대표팀은 매번 비교되기는 하나 원조 '쿨러닝' 팀과의 비교를 신경 쓰지 않는다"며 "자신들의 올림픽 출전을 달성하려 했을 뿐"이라고 격려했다.
jk@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