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중소병원] ③ 안전 모범답안은 '스스로 지키는 작은 실천'

입력 2018-01-30 15:30
[지방 중소병원] ③ 안전 모범답안은 '스스로 지키는 작은 실천'

제도적 개선 못지않게 의료 종사자·환자의 안전의식도 중요

(전국종합=연합뉴스) 밀양 세종병원 참사를 계기로 곪을 대로 곪은 지방 중소병원의 환부가 드러나고 있다.

이참에 소방법 정비 등 병원 안전 부문 하드웨어를 확 뜯어고쳐야 한다는 지적이 여기저기서 나온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병원은 물론 환자 역시 자신을 지키기 위한 '작은 실천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전북의 한 병원을 찾아 '안전한 병원'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범답안을 물어봤다.

29일 오후 전주 A 병원.

이 병원 B 본부장은 과거 화재대피훈련 일지를 보여주며 "화재 예방은 병원 의지에 달린 거죠"라고 말했다.

이 병원은 지난해 7월 27일 건물 1층 화재 상황을 가정해 대피 훈련을 했다.

환자와 의료진 80여 명이 합심해 거동이 어려운 환자를 건물 밖으로 대피시키고 소화기로 진화하는 훈련까지 마쳤다.

소방서 지도 아래 모든 병원 직원이 소화기 다루는 법과 환자 구조 요령을 알게 된 값진 경험이었다고 한다.

실제 이 병원에 들어서자 '화재 시 근무자 담당 역할표'가 눈에 띄었다.

표에는 통보연락반, 소화반, 대피유도반, 응급구조반 역할을 맡은 직원 이름이 적혀 있었다.



복도를 따라가니 곳곳에 소화전을 볼 수 있었고, 소화전 앞에는 적재물도 없었다.

병실 창문에는 유독물질을 방출하는 일반 블라인드 대신 '방염 블라인드'가 자리해 있었다.

의무 설비가 아닌 스프링클러도 천장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내부 규정에 명문화하지 않았지만, 병원 측은 화재를 막기 위해 몇 가지 자체 기준을 세웠다.

탕비실과 지하 식당 외에 병실에서는 커피포트나 전기장판 등 전열기를 전혀 쓸 수 없다. 라이터도 마찬가지다.

병원 측은 위반 사항이 적발되면 '즉시 퇴원'이라는 강수를 둔다.

이 모든 사항이 적혀 있는 안내문은 병실 문에 붙어 있었다.

B 본부장은 "병원에서 불이 나면 모두 끝장난다는 경각심을 갖고 있다"며 "병원장과 직원들이 합심해 화재를 예방하고, 발생하더라도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안을 계속 연구 중"이라고 전했다.



A 병원의 모범적인 준비 태세는 대형 참사 예방에 있어 훈련과 마음가짐의 중요성을 방증한다.

충남 태안군 C 요양병원에서 실전 같은 소방 훈련을 강조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최근 훈련은 밀양 세종병원 참사가 나기 딱 이틀 전인 이달 24일 펼쳐졌다.

한낮 수은주마저 영하권에 맴돈 강추위 속에서 훈련은 사실상 각본 없이 진행됐다.



직원들은 연기 나는 훈련용 기구에 소화기를 직접 분사하거나 들것 등을 이용해 대피 요령을 익혔다.

소방관과 함께 비상구 자동개폐장치 설치 상태를 확인하기도 했다.

여기에 더해 옥내 소화전이나 소화기 사용법을 배우거나 119 신고요령을 점검했다.

이 병원 소방담당 직원 이모 씨는 "훈련은 실제처럼 진행했다"며 "비상연락망도 다시 한 번 살피는 등 평소 준비 태세도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소방서 관계자는 "시설 관계인이나 수용인의 실질적인 자력대응 능력을 갖추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라고 설명했다.



전남 담양군의 한 병원.

이 병원의 경우엔 구체적인 경험이 도움된 사례다.

지난해 1월 18일 오전 6시 20분께 아침 식사를 준비하던 구내식당에서 불이 나 환자 25명이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레인지 후드에서 시작된 불은 다행히 다른 곳으로 번지지 않았다.

당시 조리사에서부터 병동 간호사, 병원 내 사택에 있던 의사까지 화재 사실이 신속히 전파되고 환자 대피와 진화까지 일사불란하게 이뤄져 피해를 막았다.

이날 경험을 계기로 이 병원은 상시적인 소방시설 작동 상태 확인, 소화기 활용법 등 교육으로 재발할 수 있는 화재에 대비하고 있다.

이 병원 행정팀장은 "100번을 잘해도 1번 잘못하면 용인되지 않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게 화재"라며 "제도적인 부분도 중요하지만, 종사자들의 의식이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해 틈나는 대로 예방의 중요성을 주지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손상원, 이재림, 임채두 기자)

walde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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