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35시간 근무] 아빠 육아휴직·2주 휴가·반반차…중소기업 "딴세상 얘기"
유통공룡 '워라밸' 열풍…"상대적 박탈감 키워" 불만도
(서울=연합뉴스) 정열 강종훈 정빛나 기자 = 정부가 근로시간 단축과 최저임금 인상 등 일자리 문화 개선을 권장하면서 높은 업무 강도와 남성 중심적 문화로 악명이 높던 유통공룡들이 앞다퉈 '워라밸'(Work-life Balance) 확대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공직사회와 대기업 위주로만 일자리 문화가 개선되는 분위기여서 상대적 박탈감만 키운다는 불만도 적지 않다.
◇ '아빠 육아 참여' 권장 문화 확산
28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롯데는 지난해 1월 국내 대기업 최초로 전 계열사에 '남성육아휴직 의무화 제도'를 도입했다.
남성 육아휴직 제도가 이전에도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사회적인 공감대 부족으로 사용률이 극히 저조했던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제도 변경으로 남성 직원들은 배우자가 출산하면 최소 1개월 이상 의무적으로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게 됐다.
특히 휴직 첫 달 통상임금의 100%(통상임금과 정부지원금과의 차액을 회사에서 전액 지원)를 보전함으로써 경제적 이유로 육아휴직을 꺼리는 직원들도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고 롯데는 설명했다.
그 결과 작년 한 해 육아휴직을 사용한 남성 직원은 1천100명으로, 의무화 시행 직전 연도인 2016년의 180여 명보다 6배 이상 급증했다.
이는 고용노동부가 집계한 지난해 우리나라 전체 남성육아 휴직자 수인 1만2천 명의 약 10%에 해당된다. 10명 중 1명이 롯데 직원이었던 셈이다.
CJ그룹은 지난해 5월 기업문화 혁신안을 발표하며 자녀를 둔 임직원이 부모의 돌봄이 가장 필요한 초등학교 입학을 전후로 한 달간 '자녀 입학 돌봄 휴가'를 낼 수 있도록 했다.
남녀와 관계없이 2주간 유급으로 지원하고 희망자는 무급으로 2주를 추가해 최대 한 달간 가정에서 자녀를 돌볼 수 있다.
일시적으로 긴급하게 자녀를 돌보아야 할 상황이 발생했을 때 눈치를 보지 않고 하루에 2시간 단축 근무를 신청할 수 있도록 하는 '긴급 자녀 돌봄 근로시간 단축' 제도도 신설했다.
CJ는 이와 함께 현행 5일(유급 3일, 무급 2일)인 남성의 출산휴가(배우자 출산)를 2주 유급으로 늘렸다.
◇ 2주간 휴가가고 반반차 쓴다…퇴근 시간 후엔 'PC 강제 오프'
이른바 '저녁이 있는 삶'을 보장하자는 취지의 일자리 문화 개선 제도도 늘어나고 있다.
현대백화점그룹은 작년 8월 2시간 단위로 연차를 사용하는 '2시간 휴가제'(반반차 휴가)를 유통업계 최초로 도입했다.
대다수 기업이 연차를 절반으로 나눠 쓰는 '반차 휴가제'를 도입하고 있지만, 2시간 단위로 휴가제를 도입한 곳은 드물다.
이와 함께 퇴근 시간 이후 PC가 자동으로 꺼지는 'PC 오프 시스템'도 운영하고 있다.
매일유업은 한 달에 두 번씩 금요일에 정시보다 앞당긴 오후 5시에 퇴근하는 '패밀리데이'를 운영하고 있다.
매일유업은 2009년 식품기업으로는 최초로 가족친화경영 인증기업으로 선정됐으며, 2020년까지 재인증을 획득하기도 했다.
직원들의 재충전·자기 계발 기회를 늘리겠다는 기업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애경산업은 지난해부터 직원들이 연차 휴가를 평일 기준 10일, 주말 포함 2주간 갈 수 있는 이른바 '2주 휴가제'를 도입했다.
애경 관계자는 "과거에는 업무상 부담 등으로 연차를 붙여서 길게 쓰기 어려운 분위기였지만 이 제도를 본격 시행하면서 작년 추석 연휴를 포함해 3주간 휴가를 다녀온 직원들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업무·개인·부서별 특성에 맞춰 근무 시간을 다양하게 조정할 수 있는 유연근무제나 출퇴근 시간을 자유롭게 정하는 시차출퇴근제 등을 도입하는 기업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 "아파도 밤 10시까지 야근…'신의 직장' 남얘기"
유통가를 중심으로 확산하는 '워라밸 열풍'을 둘러싸고 일각에선 잡음도 끊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일자리 문화 개선이 공공기관과 대기업 위주로만 확산하다 보니 불만을 호소하는 직장인들이 적지 않다.
중소기업에서 근무하는 이모(33)씨는 "며칠 전에도 심한 장염에 걸려서 수일간 밥도 못 먹었는데 일이 밀려 밤 10시까지 야근을 해야 했다"며 "남들처럼 '불금'은 커녕 제때 퇴근을 하지 못할까 걱정해야 하는 처지인데, 대기업은 오후 5시에 퇴근한다니 이래서 '대기업, 대기업' 하나 싶더라"며 한숨을 쉬었다.
또다른 회사원도 "우리 회사의 경우 육아휴직이나 연차 휴가 등은 비교적 자유롭게 쓰는 분위기이지만, 유연근무제의 경우 아직 허용되지 않는 분위기"라며 "얼마전 한 직원이 유연근무제를 쓰려고 했다가 반려됐다"고 말했다.
계약직 근무자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은 더 크다.
한 무역회사에서 계약직으로 근무하는 김모(31)씨는 "아내가 임신한 뒤 처음으로 육아휴직을 생각해봤지만, 같은 근로계약 조건의 여성 직원들도 눈치 봐 가며 육아휴직을 겨우 쓰는 분위기에서 나에겐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라며 "워라밸은 먼나라 꿈같은 얘기다"라고 말했다.
기업들이 앞다퉈 도입하는 유연근무제 확산 등이 비정규직 확대와 일자리 질 저하라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도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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