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대 연극반, 200년 금녀 전통 깨고 여성도 무대 올린다

입력 2018-01-26 16:37
하버드대 연극반, 200년 금녀 전통 깨고 여성도 무대 올린다

'헤이스티 푸딩', 첫 공연 174년 만에 여배우 오디션 허용



(서울=연합뉴스) 강건택 기자 =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학생 극단이자 세계에서 3번째로 오래된 연극 단체인 하버드대 연극반 '헤이스티 푸딩'(The Hasty Pudding Theatricals)이 200여 년 만에 '금녀'(禁女)의 벽을 허물었다.

뉴욕타임스(NYT)와 AP통신은 25일(현지시간) 이 극단이 올 하반기 오디션에서부터 여학생 배우를 모집해 배역에 합류시킬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1795년 설립된 헤이스티 푸딩은 1844년 첫 공연 때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여배우를 무대에 올린 적이 없다. 그동안 남학생들이 여장을 하고 여성 배역을 소화하는 전통을 고수해왔다. 최근에는 여성 멤버도 선발했으나 무대 뒤에서 보조 역할을 하는 데 그쳤다.

따라서 이 극단에 여배우가 합류하는 것은 극단 창립일로부터 223년 만이자, 첫 공연으로부터 174년 만의 일이다.

아미라 위크스 극단 대표는 "헤이스티 푸딩은 여성의 오디션 참가를 기꺼이 받아들이며 개인의 재능을 근거로 배역을 연기할 기회를 동등하게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헤이스티 푸딩은 '금녀의 전통'을 갑자기 바꾼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지는 않았다.

다만 최근 여러 해 동안 특정 성(性)에게만 개방한 하버드대 교내 단체들에 대한 논란이 커지고, 할리우드를 비롯한 직장 내 여성 대우와 성희롱 문제를 공론화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그 배경이 된 것으로 NYT는 추정했다.

특히 작년부터 성폭력 고발 캠페인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이 할리우드에서 시작되면서 압박의 강도가 높아졌다.

이런 맥락에서 헤이스티 푸딩이 수여하는 '올해의 여성상'을 받은 배우 밀라 쿠니스가 수상을 거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았다.

전날 이 상을 받은 쿠니스는 "100년이 넘은 이 전통을 보라. 지금은 시대가 변했다"면서 "변화가 없었다면 나는 여기 있지 않았을 것"이라고 일침을 놨다.

대학 내부에서도 2015년부터 여학생들이 헤이스티 푸딩의 오디션에 참가하며 무언의 항의 시위를 해왔다. 물론 오디션에 합격한 여학생은 아무도 없었다.

당시 이 운동을 주도한 졸업생 테스 베이비슨은 NYT에 "단지 전통을 고수하고 그들이 알고 있는 것을 계속하려 했다고 생각한다"며 "하지만 이제 그런 시대가 끝났다. 사람들은 남자 배우만 있는 극단이 존재하게 내버려두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울러 하버드대 행정당국의 노력도 이런 변화의 계기가 됐다.

대학 측은 2016년부터 남성 또는 여성으로만 이뤄진 클럽에 참가하는 학생들이 교내 운동부 주장과 같은 리더를 맡을 수 없게 하고, 장학금 수여를 위한 학장 보증을 금지하는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firstcircl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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