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미 세이프가드 발동, 국익보호 차원서 당당히 대처해야

입력 2018-01-23 19:08
[연합시론] 미 세이프가드 발동, 국익보호 차원서 당당히 대처해야

(서울=연합뉴스) 미국 정부가 22일(현지시간) 외국산 세탁기와 태양광 셀·모듈에 대해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 조치)를 발동했다.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수입 세탁기와 태양광 셀·모듈에 대한 세이프가드 권고안을 받아들여 관세를 부과하기로 최종 결정했다"고 밝혔다. 미국의 세이프가드 발동은 2002년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한국산을 포함한 수입철강 제품에 발동한 지 16년 만이다. 이번 세이프가드 발동으로 미국에 가정용 세탁기를 수출하는 삼성전자와 LG전자, 태양광 모듈 업체들이 적잖은 타격을 받게 됐다. 정부는 민관 긴급대책회의를 열어 미국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USTR에 따르면 수입 가정용 세탁기의 저율관세쿼터(TRQ)는 120만대다. 첫해인 올해에는 쿼터 내 물량에 20%, 초과 물량에 50% 관세를 매긴다. 2년 차, 3년 차에는 관세를 조금씩 낮춰 쿼터 내 물량에 18%, 16%를, 초과 물량에 45%, 40%를 물린다. TRQ(연도별로 5만∼9만 개)를 초과하는 세탁기 부품에도 첫해에 50% 관세를 적용한 뒤 3년 차까지 매년 5%씩 낮춘다. 태양광 셀에는 TRQ(2.5GW) 초과 물량에 첫해 30%로 시작해 4년 차가 될 때까지 매년 5%씩 낮춘다. 모듈에는 쿼터 없이 같은 비율의 관세를 부과한다. ITC는 세탁기 쿼터 내 물량에 관세를 부과하지 않는 안과 20%의 관세를 물리는 안을 제시했는데, 트럼프는 20% 안을 선택했다. 더 당혹스러운 부분은 권고안의 세이프가드 대상에서 빠졌던 한국산 세탁기를 트럼프가 포함했다는 점이다.

관련 업계는 '최악의 시나리오'로 보고 대책 마련에 나섰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도합 연간 300만대 정도의 가정용 세탁기를 미국에 수출한다. 저율 관세 적용 물량이 120만 대에 불과하니 나머지는 50%의 관세를 물어야 한다. 한국 세탁기가 아무리 품질이 뛰어나더라도 미국 시장에서 가격경쟁력을 상실할 게 뻔하다. 미국에서 직접 만들어 파는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는 지난 12일 사우스캐롤라이나 뉴베리에서 세탁기공장 준공식을 했다. LG전자도 2019년 초로 예정됐던 테네시주 세탁기공장 가동 시점을 올해 말로 앞당기기로 했다. 하지만 생산 초기에는 미국 내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다고 한다. 태양광 업계도 충격이 크다. 한국은 2016년 기준으로 13억 달러(현 환율로 1조3천80억 원)어치의 태양광 전지와 모듈을 미국에 수출했다. 태양광 업계는 "이번 조치로 대미 수출이 10∼30% 줄어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번 세이프가드 발동은 '미국 우선주의'를 표방하는 트럼프 정부의 보호무역 공세 신호탄이다. 미정부는 이달 말 외국산 철강·알루미늄에 대한 국가안보 232조 조사 보고서를 발표하고, 3월에는 USTR 통상정책 어젠다 보고서와 국가별 무역장벽(NTE) 보고서를 낸다. 4월에는 수입철강에 대한 세이프가드 적용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올해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보호무역 조치들을 가시화해 트럼프 지지층을 결집하려는 의도로 분석된다. 미국이 국내 정치 목적을 우선시해 국제규범에 어긋나는 보호무역 공세를 펼 경우 강력히 대응해야 한다. 정부가 긴급대책회의를 열어 WTO 제소 쪽으로 의견을 모은 것은 그런 의미에서 적절했다.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미정부의 이번 조치에 대해, 급격한 수입증가, 심각한 산업피해, 수입증가와 산업피해의 인과관계 등 세이프가드 발동 요건을 전혀 갖추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기술과 디자인에서 앞서는 한국 제품을 이런 식으로 견제하는 것은 공정한 경쟁과 호혜의 원칙에도 맞지 않는다. 정부가 국익을 지키는 차원에서 당당히 맞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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