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성추문 묵인 의혹 사제 비호 사과…"피해자에 큰 상처 줘"

입력 2018-01-23 01:30
교황, 성추문 묵인 의혹 사제 비호 사과…"피해자에 큰 상처 줘"

"증거 없는 의혹 제기는 중상모략" 종전 입장은 고수

(로마=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칠레 방문 시 미성년자 성추문 은폐 의혹을 받는 성직자를 비호하는 발언을 해 비판을 받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자신의 말에 대해 사과했다.

교황은 21일(현지시간) 중남미 방문 길에서 로마로 돌아오는 귀국 비행기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내 발언이)학대받은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 것에 대해 사과한다"고 밝혔다.



교황은 이어 "나도 모르게 그들을 아프게 한 것에 용서를 구한다"며 "그렇지만, 그것은 의도하지 않은 상처"라며 "나 역시 이로 인해 많이 아팠다"고 말했다.

교황은 "나는 그들이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고 있는지를 알고 있다"며 "교황이 그들의 면전에서 '증거를 갖고오라'고 말한 것은 뺨을 때리는 것에 다름 아니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교황은 지난 18일 칠레 북부 항구도시인 이키케에서 성직자의 아동 성추행 은폐 의혹을 받고 있는 후안 바로스 주교에 대한 칠레 기자의 질문에 "바로스 주교에 대한 증거를 갖고 오면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라며 단 하나의 증거도 없고, 모든 것이 중상모략이다. 알았어요?"라고 말해 논란을 빚었다.

바로스 주교는 수십 명의 미성년자를 성추행한 사실이 드러나 2011년 면직당한 페르난도 카라디마 신부의 제자로, 카라디마 신부의 성추행을 묵인해왔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바로스 주교는 자신의 스승이자 멘토였던 카라디마 신부의 성추행 사실을 몰랐다고 항변하고 있으나, 카라디마 신부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피해자들은 바로스 주교가 성추행 장면을 목격해놓고도 이를 중단시키기 위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고 수 년 동안 주장해와 양측의 진술이 엇갈리는 상황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날 이례적인 자아 비판과는 별도로 바로스 주교에 대한 옹호는 거두지 않았다.

교황은 "증거가 없기 때문에 바로스 주교를 비난할 수 없다. 또한 나는 그가 결백하다고 믿고 있다"며 바로스 주교가 칠레 오소르노 주교 직을 계속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교황은 또 "바로스 주교의 의혹을 믿고 있는 사람들의 최선의 방책은 증거를 갖고 오는 것"이라며 "증거 없이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은 중상모략의 죄를 짓는 것"이라고 말해 종전의 입장에서 물러서지 않았다.

한편, 프란치스코 교황은 칠레 수도 산티아고에서 이키케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현지 라탐 항공사 소속 승무원 커플의 결혼식 주례를 선 것을 놓고 일각에서 비판이 일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스스로를 변호했다.

보수파를 중심으로 한 가톨릭계 일부는 성스러운 혼배 성사를 교회가 아닌 특수한 환경에서 진행했다며 못마땅함을 내비치고 있다.

교황은 당시 승무원 커플이 기내에서 교황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자신들이 8년 전에 혼인신고를 한 뒤 두 자녀를 낳았지만, 막상 자신들의 교구 성당이 지진으로 파괴된 탓에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리지 못한 사연을 건네자 즉석 결혼식을 제안하고, 이들 커플의 주례를 선 바 있다.

교황은 "그들은 오래 전에 수강했던 혼배 성사 교육 내용까지 기억하고 있을 만큼 혼배 예식에 대한 준비가 돼 있었고, 이에 (혼배 의식을 해도 좋겠다는)판단을 내린 것"이라며 "성례는 (조건을 따질 것이 아니라)사람들을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ykhyun14@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