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와 캐릭터에도 궁합이 있다

입력 2018-01-21 09:00
수정 2018-01-21 21:48
배우와 캐릭터에도 궁합이 있다

이규형·박호산·서지혜·장기용 적역 만나 부상



(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 이규형, 박호산, 장기용, 서지혜.

최근 저마다 드라마에서 '적역'을 만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배우들이다.

배우와 캐릭터에도 궁합이 있다. 연기력과 인기가 비례하지 않는 세상에서, 배우에게 잘 만난 캐릭터 하나가 인생역전의 기회가 되기도 한다.





◇ '해롱이' 이규형·'문래동 카이스트' 박호산

"해롱이가 '비밀의 숲'의 윤과장이었다니!"

tvN '슬기로운 감빵생활'에서 마약쟁이이자 여성스럽고 귀여운 동성애자인 '해롱이'로 인기를 모은 이규형. 그의 멋진 연기에 열광한 시청자들은 그가 지난해 tvN '비밀의 숲'과 KBS 2TV '화랑'에 출연했다는 사실을 알고는 '경악'하고 있다. 동일인물인지도 몰랐을 뿐만 아니라, '화랑'에서는 별반 주목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규형은 '비밀의 숲'에서 냉철한 검사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연쇄살인사건의 행동대장이었음이 밝혀져 반전을 안겼던 '윤과장'이었고, '화랑'에서는 나쁜 짓을 일삼는 불량배였다.



박호산 역시 '슬기로운 감빵생활' 덕에 떴다. 그는 혀짧은 소리를 내는 철부지 개구쟁이 같은 도박꾼 '문래동 카이스트'를 기가 막히게 소화해내며 갈채를 받았다. 대사 처리에 있어 고난도의 기술이 필요한 역이었는데, 그는 장난치는 것처럼 하지 않으면서 이를 능숙하게 소화해냈다.

박호산은 2016년 SBS TV '원티드'에서 가습기 살균제 문제를 은폐한 대기업 사장, 2017년 SBS TV '피고인'에서 정의로운 부장 검사로 출연했다. 둘다 양복 잘 차려입은 우리 사회 젊잖은 상류층이자 엘리트였다. 머리카락도 까맣게 염색한 상태. '문래동 카이스트'와는 하늘과 땅 차이가 나는 캐릭터다. 그러나 박호산을 시청자에게 각인시킨 캐릭터는 혀 짧은소리를 내는 죄수 '문래동 카이스트'가 됐다.



◇ '샤론' 서지혜·'남길 선배' 장기용

서지혜는 KBS 2TV '흑기사'의 200살 먹은 악녀 '샤론'을 통해 데뷔 12년 만에 적역을 만났다. 늘 예쁘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배우로서는 주목받지 못했던 그는 이번 '샤론'을 통해 자신만의 매력을 확실하게 발산하고 있다.



청순하고 참한 역할만 할 때는 별반 눈에 띄지 않던 그가 당돌하고 섹시하며 욕망에 휩싸인 캐릭터를 만나자 공작이 화려하게 날개를 펼친 듯 강렬하게 다가온다. '샤론'이 '허당'기 다분한 코믹함도 장착해 단순한 악녀를 넘어서는 것 역시 서지혜에게는 행운이다.



장기용은 KBS 2TV '고백부부'에서 근사한 외모와 남성미를 갖춘 ROTC(학생군사훈련단) 대학생 정남길을 맡아 시청자의 눈에 쏙 들어왔다. 11살 연상의 선배 장나라와 호흡을 맞추면서도 어색하지 않은 '그림'을 연출하는 데 성공한 그는 '그때 그 시절 멋진 대학 선배'의 아이콘이 됐다.



SBS TV '괜찮아, 사랑이야', KBS 2TV '뷰티풀 마인드', tvN '그녀는 거짓말을 너무 사랑해' 등에서 자유분방한 지금의 청춘을 표현했을 때는 그저 그런 신인 중 한명이었던 장기용은 1999년도의 각 잡히고 깔끔한 '남길 선배'를 연기하면서 이름을 알리게 됐다.



◇ 대박 친 캐릭터가 발목을 잡기도

이러한 '적역'을 만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은 배우에게 일생일대의 기회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그 캐릭터를 넘어서지 못하고 오히려 발목이 잡히는 사례도 생긴다.

대표적으로 '응답하라' 시리즈로 아이돌스타에서 단숨에 배우로 각광받은 혜리와 정은지가 있다.

'응답하라 1988'의 '덕선'으로 대대적인 사랑을 받았던 혜리는 이후 SBS TV '딴따라'와 MBC TV '투깝스'에 출연했지만 모두 연기력 논란에 휩싸였다. 혜리에게는 '덕선'이 찰떡궁합을 이룬 적역이었으나, 이후의 캐릭터는 모두 제몸에 맞지 않는 것을 입어 부족한 연기력을 노출하고 말았다.



또 '응답하라 1997'의 '시원'을 멋지게 소화해냈던 정은지는 이후 SBS TV '그 겨울 바람이 분다', KBS 2TV '트로트의 연인'을 거쳐 JTBC '언터처블'에 출연하고 있지만 '응답하라 1997'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시원'의 그림자가 워낙 큰 데다, 이후 맡은 캐릭터들과의 부조화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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