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와 클래식 피아니스트 뇌 구조는 서로 다르다
같은 곡 연주해도 뇌파 달라…반응속도와 정확성도 차이
(서울=연합뉴스) 최병국 기자 = 세계적 유명 재즈 피아니스트 키스 자렛은 콘서트에서 재즈곡 외에 클래식 곡도 연주할 생각을 해본 일이 있느냐는 질문에 "없었다. 필요한 회로가 서로 다르므로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라고 답한 일이 있다.
비전문가들은 전문 음악인이면 두 종류 음악을 바로 바꿔가며 연주하는 일이 어렵지 않으리라고 여긴다. 물론 어느 정도는 연주할 수 있으나 두 장르 음악을 모두 '프로다운 수준'으로 연주하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 않다는 것이 전문 음악인들의 말이다.
독일 막스플랑크과학진흥협회 산하 '인간 인지 및 뇌과학 연구소(CBS) 다니엘라 잠러 연구원팀은 자렛의 말을 뒷받침하는 뇌신경과학적 증거와 설명을 처음 내놓았다.
연구팀은 같은 곡을 연주할 때도 재즈 피아니스트와 클래식 피아니스트의 뇌파와 뇌-신체 반응이 다르게 나타났다는 실험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CBS가 배포한 보도자료에 따르면 연구팀은 재즈와 클래식 피아노 전문 연주자 각 15명에게 음향을 끈 컴퓨터 화면을 통해 피아노를 연주하는 손가락과 건반을 보고 그 곡을 따라 연주하게 했다.
연주되는 곡은 중간중간 화성과 연주방법(손가락을 움직이는 운지법)이 잘못돼 있는 부분들이 불규칙하게 일정 길이씩 삽입돼 있어 연주자들은 예상 밖의 곡 진행에 순발력 있게 대응해야 했다.
피아니스트들의 머리에는 뇌파검사(EEG) 센서가 부착됐으며, 피아노에도 건반을 누르는 속도와 정확성 등을 자동 기록하는 장치가 연결됐다.
실험 결과 표준 코드로 진행되다가 갑자기 화성적으로 예상치 않았던 코드가 나왔을 때 재빨리 적응해 연주하는 속도에서 재즈 피아니스트(평균 0.4초)가 클래식 피아니스트(평균 0.6초)보다 빨랐다. 반면 운지의 정확성에선 클래식 피아니스트가 더 뛰어났다. 예상 밖 코드들을 모방할 때 실수가 상대적으로 적었다.
또 집중력과 창조력과 각각 관계있는 뇌파인 베타파와 세타파의 증감에서도 클래식과 재즈 피아니스트들 간에 다르게 나타났다.
이는 재즈와 클래식의 특징, 음악가에게 필요한 것 등에 차이가 있고, 오랜 연습과 연주 과정에서 뇌 속에 정보처리 방식이 서로 다르게 각인돼 있어 전환이 어려울 수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연구팀 설명에 따르면 클래식 연주자는 곡을 능숙하게 해석하는 데에, 재즈 연주자는 창조적으로 즉흥 처리하는 데에 더 중점을 둔다. 결정적 차이는 연주를 어떻게 전개할 것인지 뇌가 계획하는 방식이다.
두 그룹 모두 우선 연주하려는 것이 무엇인지(즉, 눌러야 하는 키들)를 알아야 한다. 또 어떻게 연주해야 할지(즉, 손가락 사용법)를 알고 염두에 두며 연주해야 한다.
클래식 피아니스트는 상대적으로 후자, 즉 '어떻게'에 초점을 맞춘다. 테크닉과 개인적 표현력을 실어 완벽하게 연주하는 것이 중요하므로 운지법의 선택이 긴요하다.
반면에 재즈 피아니스트는 '무엇'에 더 집중한다. 그들은 늘 즉흥연주를 할 준비가 되어 있고 예상 밖의 화성에 빨리 적응한다.
연구팀은 일반인과 전문 음악가의 뇌는 다르다는 건 이미 알려졌으나 이번 연구결과는 "뇌가 주변 환경의 요구에 얼마나 정밀하게 적응하는지를 보여준다고 밝혔다.
또 "연주 때 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완전히 이해하려면 음악의 한 장르에만 초점을 맞춰서는 충분치 않다는 점도 분명히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잠러 연구원은 그동안 음악과 인간 신체·뇌 간의 관계 연구는 서양 고전음악만을 대상으로 삼아온 문제가 있다면서 "더 큰 그림을 보려면 여러 장르의 최소공통분모를 탐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언어처리의 보편적 메커니즘을 알기 위해 하는 연구를 독일어로만 한정해선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이 연구결과는 국제학술지 '뇌신경영상'(NeuroImage) 4월 1일 자 호에 실릴 예정이며, 초록은 온라인판에 17일 공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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