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애매한 존엄사법…"환자 원하는데 의료진 반대하면?"
허대석 서울의대 교수, 연명의료법 관련 서적 출간
환자 사례 토대로 임종기 기준 등 세부안 마련 촉구
(서울=연합뉴스) 김민수 기자 = #1. 20년 전 폐렴을 앓아 한쪽 폐를 절제한 70대 남성 A 씨는 눈물이 심하게 나오는 증상을 치료하기 위해 안과 수술을 받다가 폐렴에 다시 걸렸다. 항생제 투여 등에도 폐렴 증상은 점점 심해졌고, 아내와 자녀는 평소 A 씨의 의중에 따라 인공호흡기 제거 등 연명의료 중단을 요구했다. 그러나 의료진은 법적 문제가 발생할 우려가 있어 연명의료를 계속했다. A 씨는 그렇게 중환자실에서 2주를 버티다가 사망했다. A 씨는 과연 임종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행사한 것일까.
#2. 80대 여성 B 씨는 빙판길에 넘어져 오토바이와 충돌해 골반 및 대퇴골 골절로 입원했다. 평소 만성호흡기질환, 당뇨병, 만성신부전증 등으로 외래 진료를 받아온 B 씨는 인공호흡기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다. 가족들은 "할머니가 TV, 신문에서 연명의료 장치에 의존하는 삶을 보면서 '저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스스로 자신을 돌볼 수 있는 수준까지 회복될 가능성은 어느 정도인가"라며 인공호흡기 적용을 반대했다. 의료진은 적극적인 치료를 해보고 싶었으나, 회복 가능성에 대한 확답을 내놓을 수 없었다. B 씨 가족과 의료진의 마찰은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3. 10대 남학생 C 씨는 육종 진단을 받은 후 항암치료와 방사선 치료를 했지만, 몸 상태가 더 악화했다. 암이 폐로 전이됐고, 늑막에 물이 차는 등 의료진은 C씨가 더는 회생할 가능성이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C 씨의 아버지는 심폐소생술 금지 동의서에 서명했으나, 어머니는 의료진이 아들의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법적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강하게 항의했다. 이에 의료진은 약물을 투여하는 등 적극적인 치료를 했으나, C씨는 결국 사망했다. 환자 본인이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가족 간 연명의료에 대한 의견이 일치하지 않을 경우 의료진은 과연 누구의 의사를 존중해야 할까.
위 3가지 사례들은 실제 의료현장에서 발생했던 일들로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되면 앞으로 자주 논란이 될 수 있는 내용이다. 이런 사례들을 토대로 내달 4일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되는 연명의료결정법의 세부안을 더 구체적으로 손봐야 한다는 주장을 담은 책이 이달초 발간됐다.
허대석 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가 그동안 겪었던 환자 사례를 중심으로 연명의료결정법에 대한 개선 방향을 담은 '우리의 죽음이 삶이 되려면'이라는 책이다.
연명의료결정법은 해당 계획서를 작성한 환자에게는 의료진의 판단 아래 심폐소생술·인공호흡기 착용·혈액투석·항암제 투여 등 4가지 의학적 시술을 중단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지난해 10월부터 이달까지 보건복지부가 시범사업을 운영한 결과, 환자 94명이 연명의료 거부 계획서를 작성했으며 임종기 환자 43명이 실제로 연명의료를 유보하거나 중단했다.
그러나 의료계 일각에서는 임종기 기준 등 구체적인 내용이 부족해 법안이 시행되면 의료현장에 큰 혼선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환자의 몸 상태가 어느 정도까지 악화했을 때 임종기로 봐야 하며, 또 질환별로 다르게 나타나는 증상들은 어떻게 해석하고 가족들에서 설명해야 하는지다. 현장 의사들도 이 부분을 난감해 한다.
허 교수는 "연명의료는 본질적으로 의학의 문제로 의료진이 잘 이해하고, 진료 현장에 적용하는 데 문제가 없어야 하는데 현재 법안은 국내 의료 현실과 동떨어진 면이 있어 보완 작업을 거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법에 대한 허점으로 허 교수는 ▲ 복잡한 서식 절차 ▲ 지나친 자기결정권의 강조 ▲ 말기 또는 임종기의 모호한 구분 ▲ 불필요한 규제 및 벌칙 조항 등을 지목했다.
허 교수는 "연명의료와 관련한 문제들은 법이 실시되고 단속을 한다고 근본적으로 해결될 일은 아니다"며 "어떤 모습으로 삶을 마무리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사회가 함께 생각하고 새로운 규범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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