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육 선물만 늘겠네요"…청탁금지법 개정에도 한우농가 냉랭

입력 2018-01-16 18:05
수정 2018-01-16 20:01
"수입육 선물만 늘겠네요"…청탁금지법 개정에도 한우농가 냉랭

굴비·화훼 농가도 '글쎄'…"농축산물은 법 적용 제외해야"

공직사회 "경조사비 이미 줄여…큰 변화 없을 것"

(전국종합=연합뉴스) "상한액을 올리면 뭐합니까. 수입육 선물만 늘고 한우 농가는 별 도움을 받지 못할 겁니다."



청탁금지법이 허용하는 음식물·선물·경조사비 상한액을 농수산물 선물의 경우 현행 5만원에서 10만원으로 조정한 개정안이 17일부터 시행될 예정이지만 한우 농가는 냉랭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원가가 비싼 한우 특성상 선물세트로 10만원 이하의 가격을 맞추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충남 홍성에서 한우를 키우는 이모씨는 "선물용 등심이나 특수부위 등 구이용의 경우 1kg당 6만∼7만원, 국거리용 양지도 1㎏에 4만원이 넘는데, 선물세트로 포장하려면 최소 2㎏는 넘어야 한다"며 "사육 기간이 길고 비용도 많이 드는 한우는 상한액을 10만원으로 올려도 선물할 수 있는 품목이 제한돼 있다"고 토로했다.

이씨는 "올해 들어 축사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의 최저임금이 인상돼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며 "상한액을 10만원으로 올려봤자 수입육이 한우 자리를 대체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강원도 횡성군의 한 축산농민도 "상한액을 늘리면 닭이나 돼지의 경우 어느 정도 선물세트를 구성할 수 있겠지만, 한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지난해 추석과 마찬가지로 이번 설도 특수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명절 성수품인 영광굴비를 생산, 판매하는 전남 영광군 법성포 상인들 역시 상한액 조정에 큰 기대를 걸지 않는다.

참조기 20마리가 들어있는 굴비 한 상자 가격이 상품의 경우 15만∼20만원에 달하기 때문이다.

상인들은 생산량 감소와 물가 상승으로 더 이상 가격을 낮출 수 없다고 하소연한다.

강철 영광굴비특품사업단장은 "그래도 명절 대목을 놓칠 수 없는 만큼 상자에 들어가는 참조기 개수를 줄이는 등 10만원 짜리 맞춤형 춘 상품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고 말했다.

이해당사자에게 커피 한 잔이라도 대접하면 여전히 법에 저촉되는 만큼, 선물 상한액을 올렸다고 해서 갑자기 농산물 소비가 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충남 예산에서 사과 농사를 짓는 정모씨는 "청탁금지법 시행 전에는 학기 말에 학부모들이 감사의 표시로 교무실과 교실에 사과 몇 상자를 선물했는데, 이제는 그런 미덕이 사라졌다"며 "이미 사회적인 분위기가 안 주고 안 받는 쪽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농산물 선물이 갑자기 늘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화훼농가 역시 공직자 등에 허용하는 화환·조화 상한액이 5만원에서 10만원으로 상향 조정되지만, 당장 화훼 경기가 좋아질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영남화훼원예농협 관계자는 "최근 화훼 출하물량이 1년 전보다 10∼20%가량 줄었다"며 "화훼농가 중 상당수가 다른 작목으로 전환하는 등 화훼농업 기반이 전반적으로 위축돼 청탁금지법 선물 상한액 조정으로 상황이 호전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농·축·수산업 농가는 농축산물에 한해 청탁금지법 선물 규제 대상에서 아예 제외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국내 농특산물 원가가 비싼 데다 더 저렴한 수입산으로 대체되는 '풍선효과' 때문에 애꿎은 국내 농가만 피해를 보게 된다는 게 이들 농가의 주장이다.

충남도 관계자는 "국민권익위원회에 자문한 결과 수입산도 상한액 인상에 포함된다고 들었다"며 "당초에는 국내산 농산물로 제한하는 방안이 검토됐지만 세계무역기구(WTO) 국제법에 위반돼 어려운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경조사비 상한액이 10만원에서 5만원으로 줄어드는 것에 대해서도 대부분의 공직자들은 예전과 달라질 게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광주시청의 한 공무원은 "경조사비 5만원은 이미 정착됐다"며 "상한액 조정이 공직자로부터 큰 관심을 받지 못한다"고 전했다.

반면 생산단가가 한우보다 저렴한 과일 생산 농가는 청탁금지법 개정이 가져올 효과를 기대하며 반겼다.

경북 안동에서 사과를 재배, 판매하는 이정아(39·여)씨는 "뒤늦은 감이 있지만 농산물 선물 상한가 조정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이씨는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일부 고급 품종 상품의 경우 잘 팔리지 않아 농가가 골머리를 앓았지만, 그래도 한우 농가에 비해서는 나은 편"이라며 "농산물 선물 상한가 조정이 수입 과일 증가로 어려움을 겪는 과일 재배 농가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시했다.



충남도 관계자도 "청탁금지법은 농수축산 농가의 어려움을 최우선으로 고려해 개정된 만큼 많은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청탁금지법이 허용하는 음식물·선물·경조사비의 상한액을 정한 이른바 '3·5·10 규정'을 '3·5·5+농수산물 선물비 10만원'으로 조정한 개정안을 17일부터 시행한다.

(이강일 장덕종 이상학 최병길 박주영 기자)

jyou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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