쉿! 말조심…2~3살 어린이도 어른들 이야기 알아 듣는다
시끄러워도 부모 등 "관계있고 신뢰하는 사람" 말은 잘 들어
부정적 단어 피하고 플러스적인 어휘 사용해야
(서울=연합뉴스) 이해영 기자 = 어려서 이해하지 못하겠지 하고 생각해 무심코 주고받은 대화를 아이가 알아들은 걸 알고 깜짝 놀란 경험,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일이다.
2~3살 어린이도 사실은 어른들이 쓰는 어려운 단어를 생각보다 훨씬 많이 알아듣는다고 한다. 아이가 장난감이나 다른 일에 정신이 팔렸거나 안 듣는다고 생각해 무심코 내뱉은 말이 아이의 뇌리에 남아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NHK에 따르면 요즘 일본에서는 이런 경험을 솔직하게 표현한 주부의 만화가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10칸 정도의 짧은 만화를 인터넷에 올린 주인공은 2살짜리 아이를 둔 엄마다. 만화에는 음식을 먹으면 자주 토하는 3살짜리 여자애가 등장한다. 토사물을 치우고 더럽혀진 옷을 빨고 딸을 씻기느라 지친 엄마가 저녁에 퇴근해온 남편에게 "힘든 하루였다"고 말한다. 문득 보니 장난감을 갖고 놀던 딸이 고개를 들지 않는다. 이름을 불러도 대답하지 않은 채 미안한 듯 고개를 숙이고 있다. 당황한 엄마가 달려가 아이를 끌어안으며 "괜찮아. 토해도 괜찮아"하고 달래주자 그제야 웃는다. "어린이는 어른이 생각하는 것 보다 어른의 이야기를 훨씬 많이 이해한다"는 설명으로 만화는 끝난다.
"가슴이 아팠다. 나는 더 심한 말을 더 많이 했는지 모른다", "절대 공감한다. 애들도 나름대로 신경을 쓰고 있다", "애가 부모의 말을 부모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잘 듣고 기억한다. 나중에 어른이 된 후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 만화에는 수많은 댓글이 달리고 있다.
비슷한 경험을 했다는 30대의 한 여성은 부부싸움 끝에 내뱉은 "친정으로 가겠다"고 한 말을 5살 난 쌍둥이 장남이 기억하고 있는 걸 알고 놀랐다고 한다. 친정으로 갈 예정이 없는데 어느 날 아이 친구 엄마로부터 "언제 가느냐"는 질문을 받고 왜 그런 걸 묻느냐고 반문한 끝에 애들이 놀면서 "(난) 친정으로 돌아가겠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경악했다. 애가 부부간의 대화를 이해하지 못할 거로 생각했는데 아니었다는 것이다. "아이 앞에서 부부싸움 해서는 안된다는 걸 절감했다"고 한다.
40대 부부도 5살 난 남자애에게서 갑자기 "언제 이사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놀랐다. 이사를 해볼 요량으로 아이가 듣지 못하도록 신경 쓰면서 대화를 나눴는데 어느 틈엔가 아이가 들었던 것이다. 이 부부는 "아이가 없는 데서 이야기한다고 했는데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아이 귀에 들어간 모양"이라며 "아이에게 뭘 숨겨서는 안 된다는 걸 실감했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과연 어른들의 이야기를 이해할까. 영·유아 발달문제 전문가인 이와다데 교코(岩立京子) 도쿄가쿠게이(東京學藝)대학 교수에 따르면 "2살이 넘으면 자기가 이야기할 수 있는 단어 보다 이해하는 단어가 훨씬 많아진다"고 한다. 언어를 이해하는 게 이야기하는 것보다 먼저라는 것이다.
입에 올리지 않는 단어도 의미는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특히 주위에 잡음이 있어도 엄마나 아빠, 보육원 선생님 등 자신과 관계가 좋고 신뢰하는 사람의 말은 확실하게 듣는다고 한다. 누구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지 아이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다데 교수는 "아이에게는 '현장의 분위기와 감정을 파악하는 능력'도 있다"면서 "이런 능력과 단어 이해력으로 어른이 생각하는 것보다 대화 내용을 잘 파악한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어린이가 있는 곳에서 대화할 때 어떤 점을 주의해야 할까. 이와다데 교수는 2가지를 들었다. 하나는 잘 알려진 이야기지만 부정적인 단어사용을 피하는 것이다. "부정적인 단어는 자기평가도 낮추게 한다. '친절하네'와 같은 긍정적 단어를 사용하면 남을 배려하는 행동을 하게 된다"고 한다. 또 하나는 어른끼리의 대화를 어른 만의 것으로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고 한다. 어린이가 4~5살이 되면 주위에서 생기는 일과 사회에 관심을 갖게 되고 말과 상황을 이해하게 된다.
이와다데 교수는 "어린이는 자기평가에도 민감하기 때문에 어린이가 있는 곳에서의 대화에는 특별히 신경을 쓸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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