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민 아픔 품어야" 호주 '역사전쟁' 격화 예고
녹색당, 전국적 캠페인 통해 '호주의 날' 변경 추진
(시드니=연합뉴스) 김기성 특파원 = 호주에서 사실상 건국기념일인 '호주의 날'이 열흘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원주민에 대한 배려를 둘러싸고 수년간 지속해온 '역사전쟁'이 격화할 전망이다.
호주에서는 영국의 첫 수인(囚人) 선단인 '제1 선단'(First Fleet)이 시드니 지역에 처음 도착한 1788년 1월 26일을 기려 이날을 '호주의 날'로 지정, 매년 대대적인 기념행사를 벌이고 있다.
하지만 이날이 원주민에게는 '침략일'에 불과해 아픔을 상기시킬 뿐이고 사회통합에도 저해된다며 일자 변경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날로 커가고 있다.
이런 가운데 호주 제3당 격인 녹색당이 최근 '호주의 날'을 바꾸는 것을 올해 최우선적인 과제 중 하나로 선정, 전국적 캠페인을 벌이겠다고 선언해 역사를 둘러싼 논쟁도 가열될 것으로 보인다.
녹색당의 리처드 디 나탈리 대표는 지난 14일 "모든 호주인은 서로 함께할 수 있고, 우리의 다양하고 개방적이며 자유로운 사회를 축하할 수 있는 날을 원하고 있다"며 지금의 1월 26일은 그런 날이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나탈리 대표는 이어 전국적으로 100명 이상의 소속 지역의회 의원들과도 협력해 공공의 논의를 한층 강화하겠다고 덧붙였다.
현재는 빅토리아주의 야라, 데어빈, 서호주주의 프리맨틀 등 3개 카운슬(council) 의회가 '호주의 날' 기념행사를 다른 날로 바꾼 상태며, 뉴사우스웨일스(NSW)주에서도 최소 2개의 카운슬이 이런 움직임을 따를 것으로 알려졌다.
'호주의 날' 변경을 바라는 유명인사나 단체, 기관의 지지도 이어졌다.
윔블던 테니스 챔피언 출신인 패트 캐시는 원주민 거주지에서 봉사 활동한 경험을 통해 그들이 '호주의 날'을 축하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함께할 수 있는 날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캐시는 또 맬컴 턴불 총리에게 원주민 마을을 방문해 그들의 빈곤을 직접 보고 그들의 생각을 들어볼 것을 권유했다.
호주 공영 ABC방송 산하 젊은층 상대 라디오 방송인 트리플 제이(Triple J)도 1월 26일에 진행하던 연례 '최대 히트곡 100곡' 선정 행사를 하루 미뤄 방송하기로 했다.
트리플 제이 측은 원주민단체와 음악인들의 요구가 이어지고 2차례의 설문조사에서도 청취자 다수가 방송 일정 변화를 요구하자 이를 수용했다.
그러나 호주 정부는 '호주의 날' 변경에 여전히 거부감이 강하다.
턴불 총리는 15일 자유 국가에서는 역사를 놓고 논쟁할 수 있다면서도 녹색당의 움직임에는 호주와 호주인을 하나로 묶는 날을 분열의 날로 바꾸려 한다며 불만을 드러냈다.
턴불 총리는 또 "우리는 호주 내 유럽인의 정착 역사가 원주민들에게는 복합적이고 비극적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호주의 날은 서로를 하나로 묶는 날"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8월에는 원주민과의 화해나 사회통합을 위해 영국 식민지 시절 역사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시드니 도심 한복판의 대표적인 공원 내 역사적 인물들 동상이 훼손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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