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후반 차별과 편견에 맞선 여기자 넬리 블라이를 아시나요
넬리 블라이의 정신병원 잠입취재기·72일간 세계일주 담은 책 출간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1885년 미국 신문 '피츠버그 디스패치'는 '여자아이가 무슨 쓸모가 있나'(What Girls Are Good For)라는 제목의 칼럼을 실었다. 칼럼은 여자는 육아와 집안일에 집중해야 하므로 직장에 나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여자의 본분은 남자를 돕는 것이라는 식의 주장을 폈다. 평소 이 신문을 즐겨 읽던 엘리자베스 제인 코크런은 이 칼럼에 분노해 '외로운 고아소녀'라는 가명으로 반박문을 보냈다.
이 반박문이 계기가 돼 엘리자베스는 이 신문사에 기자로 채용됐다. 당시 여성기자는 필명을 쓰는 관례에 따라 그는 '넬리 블라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이후 넬리는 뉴욕에 있는 신문사에서 일하고 싶었지만 기회가 없었다. 그러던 중 훗날 퓰리처상 제정자로 유명해진 조지프 퓰리처가 이끌던 '뉴욕월드'에서 그에게 제안을 해 왔다. 뉴욕시의 한 정신병원 여자병동을 잠입취재 해보라는 것. 넬리는 쿠바에서 온 '넬리 브라운'이라는 신분으로 정신이상자 행세를 한 끝에 결국 뉴욕 블랙웰스섬 정신병원에 들어가게 된다.
정신병원에서 열흘간 머무른 뒤 '뉴욕월드'는 변호사를 보내 넬리를 병원에서 꺼내줬다. 정신병원의 환자 학대와 열악한 환경을 생생하게 폭로한 넬리의 취재기는 1887년 2회에 걸쳐 '뉴욕월드'의 1면을 장식했고 넬리는 '뉴욕월드'의 정식 기자가 됐다.
신간 '넬리 블라이의 세상을 바꾼 10일'(모던아카이브 펴냄. 오수원 옮김)은 넬리의 정신병원 취재기를 담은 책이다. 정신이상자 행세를 한 끝에 병원에 잠입하는 과정부터 불이 나도 탈출이 불가능한 병실, 형편없는 음식들, 환자들을 학대하는 간호사 등 자신이 직접 10일간 경험한 정신병원의 실상을 탐사보도한 내용은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뉴욕시는 병원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고 정신질환자를 위한 복지예산을 대폭 증액했다.
함께 나온 책 '넬리 블라이의 세상을 바꾼 72일'(김정민 옮김)은 넬리의 또다른 도전을 담았다. 정식 기자가 된 그는 쥘 베른의 '80일간의 세계일주'에서 영감을 얻어 세계 일주에 도전한다. 소설 속 주인공 필리어스 포그의 기록을 깨겠다며 회사에 취재를 신청했지만, 회사는 역시 그런 일은 남자만 할 수 있다며 거절한다.
"남자를 보내면 같은 날 다른 신문사 대표로 출발해 그 남자를 이겨버리겠다"고 받아친 넬리는 1889년 결국 세계 일주에 나섰다. 비행기가 없던 시절, 4만5천km를 72일 6시간 11분 14초에 완주한 그는 단숨에 유명해지며 시대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책에는 이후 철강회사를 운영하고 1차대전 때는 동부전선의 유일한 여성 종군기자로 활동하기도 했던 넬리의 극적인 일대기가 함께 실려 있다. 여성기자가 드물었던 시절, 차별과 편견에 맞섰던 넬리는 이렇게 말한다.
"진심으로 원한다면 할 수 있어요. 문제는, 당신이 그걸 원하느냐는 거죠."
넬리 블라이의 세계 일주기는 2009년 '72일간의 세계일주'라는 이름으로 출간됐다 절판된 상태이며 정신병원 잠입취재기는 이번이 첫 출간이다.
각 권 208쪽, 304쪽. 각 권 1만3천원, 1만4천원.
구글이 2015년 넬리 블라이 탄생 151주년을 맞아 제작한 기념 로고와 스페셜 영상.
zitron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