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1년] ②'대화냐 강공이냐' 갈림길에 선 대북정책

입력 2018-01-17 08:00
수정 2018-01-17 10:15
[트럼프 1년] ②'대화냐 강공이냐' 갈림길에 선 대북정책

북핵무력 완성속 군사옵션 불사→평창계기 대화모색 급선회

'최고의 압박과 관여' 유지하되 남북대화 결과 따라 선택

(워싱턴=연합뉴스) 신지홍 특파원 = 취임 1년을 맞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북정책이 갈림길에 섰다.

북한의 지난해 탄도미사일 23기 시험발사와 한차례의 핵실험 도발 감행에 맞서 최고의 압박작전을 펼치며 '화염과 분노', '완전 파괴' 등 군사 경고로 맞서왔던 트럼프 대통령이 평창동계올림픽 개최를 계기로 대북정책을 둘러싼 선택의 순간을 맞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6년 6월 애틀랜타 대선 유세에서 "김정은과 햄버거를 먹으면서 협상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지만, 1월 20일 대통령 취임 이후 그가 추진해온 대북정책은 '최고의 압박과 개입'(Maximum pressure and engagement)으로 요약된다.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를 비롯한 역대 미 정권의 '불개입'이 북한의 핵무력 완성을 방치한 만큼 철저한 압박과 개입을 통해 북핵 위기의 근본적 변화를 꾀하겠다는 것이 이 정책의 요체다.

지난 4월 트럼프 대통령이 승인한 이 정책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트럼프 안보팀은 북핵 저지를 위한 군사옵션과 김정은 체제의 전복,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방안 등을 두루 살핀 끝에 대북압박의 강화가 최선이며 선제공격 등 군사행동은 후순위로 미룬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같은 달 시진핑 중국 국가 국가주석에게 미국의 이러한 대북정책을 설명하고 대북압박에 중국이 동참해줄 것을 강력히 요청했으며, 중국기업과 은행 등을 겨냥한 '세컨더리 보이콧'(제3자 제재) 성격의 압박까지 동원하며 북한의 최대 후원국인 중국의 행동을 요구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을 통한 전투적인 대북 언사들에 이어 동해 북방한계선(NLL) 인근 상공에까지 미 전략폭격기를 출격시키는 무력시위를 벌인 것도 이러한 최대의 압박작전 속에서 나왔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평창올림픽 대표단 파견과 '핵 단추'를 동시에 언급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신년사 직후인 2일(현지시간) "내 핵 단추는 훨씬 크고 더 강력하며 잘 작동한다"고 '말 폭탄'으로 대응한 뒤 돌연 태도를 바꿨다.

"김정은과 직접 통화할 수도 있다. 남북대화 100% 지지한다"(6일), "미북 회담에 열려 있다"(10일), "김정은과 좋은 관계 갖게 될 것"(11일) 등 북한과의 대화 모색에 방점을 찍은 유화적 발언을 잇달아 내놓으며 국면전환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것이다.

미 워싱턴 외교가에서는 트럼프 행정부가 주도한 국제사회의 '최고의 압박' 작전이 주효해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와 남북대화의 재개로 이어졌다는 안보팀의 자체 판단이 트럼프 대통령의 전환을 끌어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이러한 흐름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당분간 대북압박의 고삐는 늦추지 않으면서도 남북대화의 추이를 관망하며 이 대화의 결과가 북미 간 북핵 대화의 선순환을 낳을 수 있을지 예의주시할 것으로 관측된다. 평창 패럴림픽이 끝나는 3월 중순까지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운전석을 양보하고 북미 대화의 여건이 마련되는지를 지켜본 뒤 다음 행보에 착수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트럼프 행정부가 수차례에 걸쳐 제시한 미북 대화의 조건은 대화의 성격이 비핵화 대화가 돼야 하고 북핵 폐기가 목표라는 점, 북한이 일정 기간 도발을 중단해야 한다는 점, 분명한 대화 신호를 보내야 한다는 점 등이다.

북한이 이 모든 것을 다 충족해야 대화가 시작될 수 있을지, 어느 것 하나라도 행동에 옮긴다면 테이블이 마련될 수 있을지는 다소 불분명한 측면이 있지만 북미 대화의 입구는 이러한 조건들이 현실화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질 것이라는 게 워싱턴 외교가의 대체적 공감대다.

틸러슨 장관은 최근 "우리의 정책은 여전히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불가역적인 한반도의 비핵화"라며 "우리가 어떻게 대화를 시작할지에 대해서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지만 북한이 대화가 그 결론(비핵화)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을 이해한다는 신호를 분명히 보내야 한다"고 말했다. 스티브 골드스타인 국무차관도 "북한은 테이블로 나와야 하고 핵폐기에 동의해야 한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초 문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적절한 시기와 상황에 북미대화가 열려있다"고 말했다. 최근 국무회의에서는 "남북대화가 향후 몇 주나 몇 달에 걸쳐 어디로 갈지 지켜볼 것"이라고 강조했다. 평창올림픽 계기의 남북대화 향방을 주시하면서 대북정책을 새롭게 정비하겠다는 속내다.

워싱턴 외교가의 우려는 남북대화가 북미대화의 입구를 만들어내지 못했을 경우다. "대화가 시작됐다고 북핵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라는 북한의 반응에서 보듯 북한이 유화국면을 제재완화를 노린 핵무력 완성의 시간벌기나 한미 간 틈 벌리기 등에 활용할 뿐 북핵 대화에는 관심이 없다면 평창 이후의 상황은 더욱 관리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전망이 만만치 않다.

특히 평창 이후 곧바로 한미군사훈련이 재개되고 이에 맞서 북한이 추가도발을 감행할 경우 한반도 정세는 대결국면으로 급선회할 가능성이 크다. 그 경우 트럼프 대통령은 더욱 강경한 대북압박과 제재, 나아가 군사옵션까지 손에 쥐고 북핵 문제의 운전대에 앉게 될 것이라는 게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sh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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