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가장이던 50대의 죽음…남양주 아파트 재건축 '갈등'

입력 2018-01-16 15:34
평범한 가장이던 50대의 죽음…남양주 아파트 재건축 '갈등'

"누구를 위한 재건축인가"…"조합원 동의해 진행 문제없어"

(남양주=연합뉴스) 권숙희 기자 = 경기도 남양주시에 사는 권모(50)씨는 지난 10일 오전 평소처럼 서울 강남으로 가는 출근길 도중 돌연 한강에 몸을 던졌다.

오전 10시께 경찰서에서 걸려온 전화 너머로 남편의 사망 사실을 들은 부인 조모(48)씨는 놀란 마음을 다스리기가 힘들었다.

16일 경찰 등에 따르면 권씨는 가족들에게 유서 형식의 문자메시지를 남겼으며, 권씨가 채무로 인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보고 시신 부검은 하지 않았다.

"미안하다, 먼저 가겠다"는 짧은 메시지를 남기고 세상을 등진 권씨가 최근 부쩍 아파트 재건축 문제로 힘들어했다는 게 가족과 주변인들의 이야기다.



권씨의 빈소가 차려진 장례식장에서 권씨의 부모는 "재건축이 우리 아들을 죽였다"며 울분을 토했다.

슬하에 20대 자녀 둘을 둔 평범한 가장인 권씨는 지난해 9월 남양주 양지·삼창아파트(평내2구역·약 1천세대) 재건축 비상대책위원회 부위원장 활동을 시작했다.

평내2구역은 2011년 1월 주택재건축정비구역으로 지정됐다. 평내2구역주택재건축정비사업조합은 그해 12월 조합설립이 허가 났고, 2016년 12월 사업시행이 확정됐다.

지난해 9월부터 남양주시로부터 관리처분계획인가가 떨어져 조합 측은 연말부터 이주를 통보했다.

일부 조합원들은 비대위를 꾸려 반발에 나섰다.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 감정 평가 결과 새로 지어질 아파트의 분양가는 너무 큰 부담이었기 때문이다.

권씨 가족이 사는 22평형 아파트의 감정 평가는 1억원으로 나왔으며, 17평형은 7천500만원으로 책정됐다.

그런데 재건축될 22·25·34평형의 예상 분양가는 각각 2억8천만원, 3억원, 4억원이다.

권씨 가족의 경우 이 집을 처분하고 다른 곳으로 이사를 나가려고 하더라도 7천만원의 빚을 제하면 수중에 쥐어지는 돈이 얼마 안 남는다.

분양을 포기한 다른 입주민들의 사정도 대부분 마찬가지다. 법적으로 '현금청산자'라고 부르는 이들은 앞으로 살길이 막막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달 초 이들에게는 집을 비워달라는 명도소송이 제기됐다.

2004년부터 이 아파트에 살았다는 주민 한모(47·여)씨는 "누구를 위한 재건축인지 모르겠다"면서 "남들은 재건축한다고 하면 돈을 번다고 하지만, 우리는 녹물이 나오는 집이라도 내 집에서 살 수 있다면 차라리 그냥 살고 싶다"고 토로했다.

한씨는 이어서 "여기는 말 그대로 서민아파트인데, 이건 서민을 위한 재건축이 아니다"라며 "조합 집행부에서 조합원들과 소통도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부분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주민 김모(61·여)씨도 "이 아파트에는 오랫동안 거주한 노인들이 많다"면서 "갑자기 나가라고 하면 이 한겨울에 어디로 가겠느냐"고 말했다.



정해용 비대위원장은 "제2의 비극이 또 안 나오리라는 법이 없다"면서 "이런 재건축은 돈 없는 사람은 다 죽어버리고 나가라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 비대위원장은 "우선 사업을 중단하는 것 말고는 현재로썬 방법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조합 측은 "조합원들 동의하에 진행된 재건축 사업을 절차대로 진행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A 조합장은 "이주해야 한다고 이제 막 안내를 했을 뿐 강제로 한 것은 없다"면서 "(자살사건에 대해서는) 우리도 파악 중"이라고 설명했다.

suk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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