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참사가 남긴 또다른 상처…다큐 '공동정범'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오는 20일이면 철거민 5명과 경찰 특공대원 1명의 목숨을 앗아간 용산참사가 발생한 지 정확히 9년이 된다. 당시 남일당 건물 옥상에 망루를 지어 올리고 농성을 벌이다 화재를 일으킨 혐의로 형사처벌을 받은 철거민 25명은 작년 연말 특별사면됐다. 표면적으로는 상처와 갈등이 봉합된 것으로 보인다.
25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공동정범'은 이런 기대와 추측을 무참히 깬다. 김일란·이혁상 감독이 만나 인터뷰한 철거민들의 마음은 만신창이였다. 출소 이후 다시 전쟁이 시작되고 더 지옥 같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공동정범'은 이충연 당시 철거민대책위원장을 비롯해 화재 발생 당시 망루 안에 있다가 특공대원을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철거민 5명의 증언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김일란·홍지유 감독의 다큐멘터리 '두 개의 문'(2012)이 경찰 특공대원의 법정진술과 채증영상 등으로 참사의 진상에 근접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공동정범'은 사건 이후 철거민들의 심경을 들여다보는 데 집중한다.
이들은 화재가 나는 악몽에 시달리며 알코올에 의지하거나, 분노조절장애 진단을 받기도 했다. 딸에게 '범죄자'라는 말도 듣는다.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은 더욱 괴롭다. 새총을 쏘기 위해 뚫어놓은 좁은 창 바깥으로 몸을 던지는 사이, 다른 철거민들은 탈출하지 못하고 숨졌다. 생존 본능에 따른 당연한 행동이었음에도 누군가 손가락질하는 듯하다.
영화는 참사 현장에서 살아남은 자들의 단순한 후일담을 넘어선다. 여전히 남은 과제인 진상규명을 위해 힘을 모으고 있을 거라는 외부인의 생각과는 정반대로, 이들 사이의 갈등은 심각한 수준이다. 재판 당시 진술태도를 시작으로 갖은 오해와 불신이 쌓이면서 수습하기 어려운 지경이 됐다. 먼저 망루를 빠져나간 동료를 향해 격한 서운함을 토로하는가 하면, 당시의 기억조차 서로 어긋난다.
실제로 참사 이후 이들이 한자리에 모인 건 출소하고서도 한참 지난 2015년 진상규명을 위한 좌담회 자리였다. 묵혀둔 감정이 폭발하면서 고성에 욕설마저 오간다. 영화는 용산 주민과 타지역에서 연대한 철거민 사이의 묘한 기류를 비롯해, 외부에서 짐작조차 하기 어려운 갈등의 골을 정교하게 짚는다.
영화는 국가의 책임을 묻는다. 발화원인이 정확하게 규명되지 않았는데도 단지 망루 안에 있었다는 이유로 이들을 공동정범으로 처벌한 게 갈등의 시작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타지역에서 연대한 철거민들은 보안상 이유로 망루투쟁 계획 자체를 몰랐다고 말했다.
'공동정범'은 결과적으로 용산참사를 둘러싼 국가폭력의 또다른 면을 들춰낸다. 이 다큐는 원래 '두 개의 문'의 후속작으로 기획됐다. 수감 중이던 주요 관련자들의 진술을 담지 못한 전편이 미완성작이라는 판단이었다. 애초 망루 안의 진실을 더욱 철저히 파헤칠 계획이었지만, 철거민들의 왜곡된 기억과 망가진 감정을 목격하고는 다큐의 방향을 바꿨다고 한다.
김일란·이혁상 감독은 "재산상 손해나 장애를 얻는 것뿐 아니라 믿었던 사람을 의심하고, 스스로를 의심하게 된 것도 국가폭력의 피해"라며 "이 영화를 통해 국가의 역할은 무엇이고 국가가 제 역할을 다하지 않았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함께 고민해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dada@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