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눈치보기에 교육부 입지 흔들…정책 번번이 무산·연기

입력 2018-01-15 11:44
정치권 눈치보기에 교육부 입지 흔들…정책 번번이 무산·연기

수능 절대평가·고교체계 개편 등 국가교육회의行



(세종=연합뉴스) 고유선 기자 = 새 정부 출범 이후 교육부가 추진해 온 각종 정책이 정치권 입김에 밀려 번번이 좌초되면서 교육부 입지가 흔들린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에는 유치원·어린이집 영어 특별활동 금지 방침까지 재검토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적어도 오는 6월 지방선거 때까지는 정책 추진 동력을 회복하기 힘든 게 아니냐는 우려가 적지 않다.

잇단 정책 혼선으로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학부모의 몫이 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

◇ 수능 절대평가·고교체계 개편 등 줄줄이 제동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지난해 취임 이후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절대평가 전환, 자율형사립고·외국어고 폐지를 바탕으로 한 고교체계 개편 등 문재인 정부의 교육공약 이행을 위한 다양한 정책을 내놨다.

하지만 굵직한 정책 대부분은 빛을 보지 못하고 정치권 입김에 밀려 무산되거나 연기됐다.

수능 개편의 경우 수능 전과목 절대평가제를 도입하면 변별력이 떨어져 정시모집 비중이 더욱 줄어들고 수시모집 비중이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가 수년간 이어졌다.

'깜깜이 전형'이라고 불리는 수시모집 학생부종합전형은 입시 당사자인 학생·학부모 사이에서 전혀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고교 내신 성취평가제(절대평가제)·고교체계 개편 등과 맞물린 수능 전 과목 절대평가 도입안을 마지막까지 고수하다 원점에서 재검토하기로 입장을 바꿨다.

발표 며칠 전 열린 더불어민주당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의원들과의 당정협의에서 시행을 1년 미루는 것으로 가닥이 잡혔다는 게 정치권과 교육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지난해 8월 교육부는 '여론 수렴'을 바탕으로 수능 개편을 1년 미룬다고 공식 발표했지만, 반발이 심했던 수능 절대평가를 미룬 진짜 이유는 지방선거에 미칠 영향을 우려한 정치권 입김이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고교체계 개편의 경우 자사고·외고가 일반고보다 학생을 먼저 뽑지 못하게 함으로써 표면적으로는 개편의 첫발을 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완전한 의미의 개편은 교육부와 교육청이 서로 공을 넘기다가 결국 국가교육회의로 넘어간 모양새가 됐다.

지방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기존에 자사고·외고 폐지를 줄기차게 외쳐온 일부 진보성향 교육감은 평가 대상이던 자사고·외고를 모두 재지정한 뒤 '정부 차원의 대응'을 촉구했고, 교육부도 중장기적인 고교체계 개편은 국가교육회의가 할 일이라며 한 발 빼는 모양새를 보였다.

유·보(유아교육·보육)통합의 경우 아예 현 정부 출범 초기부터 국가교육회의에서 논의하는 것으로 결론이 나 교육부 차원에서는 어떤 정책도 추진하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 부총리 임기 시작 이미 반년 지나…추진력 회복 불투명

이런 상황에서 지방선거가 다섯 달 앞으로 다가온 점은 교육부의 정치권 눈치보기가 더 심해질 수 없는 이유로 꼽힌다.

최근 최저임금 인상 후폭풍, 가상화폐 거래소 폐쇄 방침 언급에 따른 투자자 불안 등 중산층, 서민층 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된 민생 이슈가 줄줄이 터졌다.

유치원 영어교육 금지 역시 아이를 고가의 유아 영어학원에 보내기 어려운 서민층에게 오히려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정책이라는 비판이 크다.

학부모의 기대만큼 공교육을 내실화하지 못한 상황에서 규제 위주의 정책을 펴는 것은 역효과를 낳는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특히 지난해 하반기 실시된 한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정책 지지율 가운데 교육분야 지지율이 35%로 가장 낮았다는 점은 청와대와 여당뿐 아니라 교육부에도 적지 않은 부담이다.

실제로 더불어민주당 교문위원들은 최근 부총리와의 만찬에서 정책 시행을 연기하자는 의견을 전달했고, 김 부총리는 일각의 문제의식에 공감한다는 뜻을 표했다.

이 때문에 유치원 영어 특별활동 금지 역시 시행을 유보하거나 국가교육회의로 공을 넘겨 전면 재검토할 수 있다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

하지만 이럴 경우 앞으로 교육부의 정책 추진 동력에 적신호가 켜질 가능성이 크다.

통상 교육부 장관들이 1년 조금 넘는 기간 장관직을 수행해 온 점을 고려하면 지난해 7월 초 취임한 김 부총리도 이미 임기의 상당 부분이 흘러갔다.

지방선거가 가까워질수록 정치권 입김은 더 강해질 수밖에 없으므로 앞으로는 굵직한 정책을 추진하는 게 현실적으로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교육계의 한 관계자는 "국민 의견을 정책 추진 과정에서 수렴하는 것과, 설익은 정책을 내놨다가 정치권 입김에 떠밀려 입장을 바꾸는 것은 다르다"며 "지금까지 교육부가 연기한 것 가운데 박수받을 만한 것은 포항 지진에 따른 수능 연기뿐"이라고 꼬집었다.

cind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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