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당 없애고 근무시간 줄고…'최저임금 갑질'에 우는 노동자들
상여금 산입 등 꼼수에 "최저임금 올라도 달라진 게 없어" 푸념
'최저임금 갑질' 사업장 근로감독 요청…경영난 호소 자영업자도
(서울=연합뉴스) 사건팀 = "최저임금이 오르면 뭣해요. 받는 돈은 지난해나 올해나 달라진 게 없는데…"
14일 서울 영등포구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만난 경비원 A(71)씨는 "시간당 최저임금이 올라도 근무시간이 줄어드는 바람에 총급여는 달라진 게 없다"며 이같이 푸념했다.
A씨는 "원래 야간 근무자는 자정까지 근무하고 취침을 했는데 새해 들어 취침 시간이 오후 10시 30분으로 앞당겨졌다"며 "실제 근무를 하다 보면 자정 넘어까지 일하는 경우가 많은데 쉴 수도 없는 휴식시간이 늘어난 셈"이라고 말했다.
인상된 최저임금이 적용된 지 2주가 지났지만, 이를 실감하기 어렵다는 것이 노동 현장의 대체적인 분위기였다.
올해 시간당 최저임금은 지난해보다 16.4% 올라 시간당 7천530원이 됐다. 월급으로 따지면 약 20만 원 정도가 오른 셈이다.
이처럼 인건비 부담이 늘자 근무시간을 줄이거나 각종 수당을 없애는 등 '꼼수'도 성행하고 있다.
실제 서울 은평구의 한 아파트 단지는 최근 입주자 대표 회의 끝에 경비원과 미화원의 근무시간을 줄이기로 했다. 이 아파트에 부착된 안내문에 따르면 최저임금제 시행에 따라 기존 5시간이었던 경비원 휴게시간이 6시간으로 늘어나고, 미화원은 토요일 오전 근무가 없어져 평일만 근무하게 됐다.
임금을 줄이려 성과급을 줄이거나 각종 수당을 없애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서울 종로구의 한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B(27)씨는 "주말까지 매일 근무하고 근무시간도 긴 편이라 성과급을 받고 있었는데, 점주가 최저임금이 오른 만큼 성과급을 줄였다"고 말했다.
이어 "이 편의점은 그나마 영업이 잘 돼서 최저 시급을 맞춰 주는 것"이라며 "다른 편의점들은 최저 시급도 못 주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귀띔했다.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도 최저임금과 관련한 다양한 청원 글이 올라와 있었다.
영세 제조업체에 근무한다는 한 근로자는 "회사에서 최저임금 인상분만큼 급여를 주기 어렵다며 별도로 지급되던 식대와 차량유지비를 기본급에 넣어 주기로 했다"며 이런 사업장이 없도록 방안을 강구해달라는 글을 올렸다.
또 인건비 부담이 커진 영세사업자에 대한 지원을 늘리되 각종 꼼수로 임금을 줄인 사업자에게는 세무조사 등 제재가 필요하다는 글도 눈에 띄었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에 따르면 12일까지 이 단체에는 100여 건이 넘는 '최저임금 갑질' 제보가 들어왔다.
직장갑질119는 이 가운데 10개 사업장에 대해 12일 고용노동부에 근로감독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들 사업장에는 대형병원과 제약회사, 커피 전문점, 프랜차이즈 식당 등이 포함됐다고 이 단체는 전했다.
유형별로는 한 달 이상의 간격을 두고 주던 상여금을 매달 지급하는 방식으로 바꿔 최저임금 산정 범위에 포함하는 등 상여금을 삭감하는 '상여금 갑질' 사례가 5곳이었다. 각종 수당을 없애 기본급에 포함하는 '수당 갑질'은 3곳, 서류상으로만 휴게시간을 늘리고 근로시간은 줄이는 '휴게시간 갑질'은 2곳이었다.
하지만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해 경영난을 호소하는 업주들도 있었다.
서울 영등포구에서 커피숍을 운영하는 50대 여성은 "현재 아르바이트생을 3명 쓰고 있는데 최저임금이 인상돼 부담이 크다"며 "매출에 변화가 없으니 앞으로 근무 인원을 줄여야 할 것 같다"고 울상을 지었다.
서울 광진구에서 분식점을 운영하는 C(45)씨는 "4인 체제로 운영하던 식당을 3인 체제로 바꿨다"며 "업주들의 부담을 덜어주지 않으면 결국 근로자의 일자리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인건비를 아끼려고 편법을 쓰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면서도 "인건비 부담이 커진 소상공인들이 숨을 돌릴 수 있게끔 정부가 보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도 "고임금 대기업과 저임금 중소기업 간의 이중 구조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최저임금 인상이 꼭 필요하다"며 "다만 영세사업자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원청업체와 하청업체, 프랜차이즈 본사와 대리점이 서로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부담을 나누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kih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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