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찾다 고독사 입양인 쓸쓸한 장례…다시 노르웨이로

입력 2018-01-11 13:54
수정 2018-01-11 17:33
'뿌리' 찾다 고독사 입양인 쓸쓸한 장례…다시 노르웨이로

유족 없이 발인·화장…유골 비행기 편으로 양어머니에게 인계

(김해=연합뉴스) 최병길 기자 = 37년 전 비행기를 타고 입양 길에 올랐던 아이는 중년의 나이에 일시 귀국, 친부모를 애타게 찾다가 끝내 한 줌의 재로 변하고 말았다.

혈육을 찾아 5년 가까이 전국을 헤매던 그는 사무치는 혈육의 정을 느껴보지도 못하고 고시텔에서 혼자 죽음을 맞았고, 이승을 하직하고도 고국에 묻히지 못하고 37년 전 그 머나먼 하늘길로 다시 떠나게 됐다.

친부모를 찾으려고 고국에서 5년간 애를 태우다 혼자 생을 마감한 노르웨이 국적 입양인 얀 소르코크(45·한국 이름 채성우) 씨장례가 11일 김해시 한 병원 장례식장에서 쓸쓸하게 치러졌다.



얀 씨 시신은 지난 10일 밤에야 입관됐다.

사인 규명을 위한 부검을 거쳐 유족을 찾아 장례를 결정하기까지 차가운 병원 영안실에 안치된 지 20일 만이었다.

사건을 담당했던 김해중부경찰서는 최근 노르웨이 대사관을 통해 얀 씨 양어머니와 어렵사리 연락이 닿아 장례절차를 협의했다.

양어머니는 한국에 들어와 장례를 치를 수 없는 상황이라며 한국에 있는 대리인에게 얀 씨 시신을 인수토록 위임했다.

대리인은 한국에 있는 국제화장전문업체 대표다.

얀 씨 유족은 시신을 한국에서 화장한 후 유골을 노르웨이에서 넘겨받아 장례를 마무리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 위임을 받아 장례를 치른 김일권 대표는 "해외로 입양된 고인의 사연을 듣고 마음이 아팠다"며 "노르웨이 유족은 한국에서 외롭게 생을 마감한 얀 씨를 서둘러 만나려고 애를 태우고 있다"고 말했다.

업체측은 김해에서 1시간가량 떨어진 밀양화장장으로 시신을 옮겨 화장 절차에 들어갔다.

화장장에는 고인이 한 때 머물렀던 해외입양인들을 위한 쉼터인 사단법인 뿌리의집 관계자 4명이 도착, 운구를 도왔다.

2시간여 만에 한 줌의 재로 변한 고인의 유해는 유골함에 담겨 곧바로 공항으로 향했다.



유해는 이르면 오는 12일 인천공항을 출발, 노르웨이 양어머니 품에 안긴다.

안 씨는 생전 주변 지인들에게 "죽으면 한국 땅에 묻히고 싶다"고 말하곤 했지만, 죽어서도 꿈을 이루지 못했다.

얀 씨는 지난해 12월 21일 오전 10시 50분께 김해시 한 고시텔 침대에 반듯이 누운 채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경찰 조사 결과, 얀 씨는 8세 때인 1980년 국내 홀트아동복지회를 통해 노르웨이로 입양됐다.

그는 2013년 친부모를 찾으려는 일념으로 고국으로 돌아와 서울과 김해 등지를 오가며 애를 태웠지만 허사였다.

그에겐 혈육을 찾을 수 있는 정보가 아무 것도 없었다.

여권에 남은 유일한 기록은 그의 출생일과 출생지가 '1974년 1월 18일 대한민국'이라는 것뿐이었다.



그에게는 어릴 적 김해 인근 보육원에서 지냈던 기억만 가물가물할 뿐이었다.

중앙입양원 정상영 대회협력국장은 "얀 씨가 6살 때인 1978년 김해에서 미아로 발견됐다는 기록만 있을 뿐 과거 기록은 전혀 남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고국에서 친부모를 찾을 길이 막막해지자 괴로운 나머지 우울증에다 자주 술을 찾다가 건강이 악화한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얀 씨가 숨진 고시텔 방안에서는 술병이 여기저기 나뒹굴었다.

외롭고 절망적인 생활 속에서도 얀 씨는 어려운 입양인들을 위해 기부금을 내는 등 따뜻한 마음을 가졌다고 지인들은 회상했다.

얀 씨 지인들은 "정부가 설립한 중앙입양원이 위기 입양인을 위한 상담과 치료 등을 성실히 돌봐야 할 의무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김도현 뿌리의집 대표는 "해외입양인 얀 씨의 죽음을 보며 '이게 나라냐'라는 생각이 든다"며 "이제 국가가 나서서 모든 아동에게 출생신고가 가능하도록 보장하는 보편적 출생등록제가 실현돼야 한다"고 말했다.

choi21@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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