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이민정책에 신음하는 엘살바도르…경제·범죄 악화 우려

입력 2018-01-11 03:10
미국 이민정책에 신음하는 엘살바도르…경제·범죄 악화 우려

미 임시보호 지위 갱신 중단에 엘살바도르인 20만∼25만명 추방 위기

미 체류자 송금 의존 경제에 '직격탄'…귀국자 적응실패·범죄표적 가능성도



(멕시코시티=연합뉴스) 국기헌 특파원 = 플로르 토바르(33)는 2주마다 미국에 사는 남편이 송금한 '생명줄'과 같은 현금을 손에 쥔다.

토바르는 남편이 송금한 돈으로 엘살바도르 수도 산살바도르에서 북서쪽으로 한 시간 떨어진 영세민 지역에 있는 방 두 칸짜리 집의 월세로 50달러를 낸다.

나머지 돈으로는 두 아들의 통학버스 대금을 비롯해 전기, 수도, 케이블TV 요금을 낸다.

토바르와 10살과 12살짜리 두 아들은 미국이 엘살바도르 출신 이민자들에 대한 '임시보호 지위'(TPS·Temporary Protected Status) 갱신을 중단하기로 결정한 후 남편의 송금 없이 미래에 펼쳐질 자신들의 삶이 어떨지 불안해하고 있다고 AP통신이 1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TPS 제도를 활용해 미국에 체류하는 엘살바도르 출신은 최소 20만 명에서 많게는 25만 명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내년 9월 9일까지 미국을 떠나지 않으면 강제로 추방당한다.

미국의 이번 조치는 인구가 634만 명에 달하는 중미의 가난한 소국 엘살바도르의 경제와 사회에 큰 부담이 될 것으로 우려된다.

미국 체류자들의 송금에 의존해온 경제가 휘청거리면서 실업이 증가하고 세계 최악의 살인율을 기록하는 가운데 범죄가 더 악화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지난 2016년 기준으로 미국에 체류하는 엘살바도르 인들이 모국으로 송금한 금액은 약 45억달러로, 엘살바도르 경제의 17%를 차지한다.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송금액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10% 늘었다.

엘살바도르 정부가 2016년에 시행한 조사를 보면 38만2천734 가구가 미국을 비롯한 해외 송금을 받고 있다.

엘살바도르 출신 잠정적 추방 대상자들이 일거에 귀국하면 7%에 이르는 실업률이 더 악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에 추방 대상자들이 미국서 태어나 체류 자격을 지닌 어린 자녀를 데리고 엘살바도르로 돌아올 경우 스페인어를 못하고 현지 환경에 낯선 어린 자녀들이 적응하지 못해 범죄조직에 가담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현지인들보다 상대적으로 부유한 귀국자들이 범죄의 표적이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토바르는 "정말 걱정된다"면서 "추방 위기에 직면한 미국 내 엘살바도르 인들은 모국에 돌아와도 기반이 없는 데다 이곳의 범죄는 매우 심각하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조만간 범죄조직에 가입할 수 있는 연령대에 도달하는 자신의 두 아들이 생활고를 못 이겨 범죄에 발을 들여놓을까 봐 두렵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뉴욕타임스(NYT)는 친미 국가인 엘살바도르 국민이 미국의 손에 자신들의 운명이 정해지는 현실을 또다시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은 1980년부터 12년간 엘살바도르 군사정권이 좌파 소탕을 위해 벌인 내전 과정에 일어난 잔혹 행위에 눈감은 채 돈과 무기 등을 지원했다.

엘살바도르 인들은 7만5천여 명이 희생된 좌파 소탕전 이후 미국이 엘살바도르를 외면했다는 인식이 강하다.

내전 중 늘어난 전투원들이 사회 복귀에 실패하면서 범죄와 폭력이 늘었고 이런 치안 불안이 미국으로의 밀입국을 부추겼지만, 미국은 자국에서 활동하는 폭력조직원들을 엘살바도르로 추방해 양쪽에 사는 엘살바도르 인들의 삶을 위험에 빠트렸다는 것이다.

penpia21@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