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년만의 무죄…'재일교포간첩단 조작사건'의 진실을 찾아나서다
간첩단 피해자 김추백씨의 딸이 쓴 '발부리 아래의 돌' 출간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1977년 3월 당시 중앙정보부는 재일교포 실업인으로 위장한 간첩조직을 일망타진했다고 발표했다. 김일성으로부터 직접 지령을 받고 재일동포 투자기업체의 임원을 가장해 국내에 잠입한 강우규(당시 60세) 등 일당 11명을 검거했다는 내용이었다.
'거물 간첩'으로 지목된 강우규는 사형 선고를 받았고 나머지 10명도 모두 유죄 판결을 받았다.
세월이 흘러 이 사건에 대한 재심이 진행됐다. 2014년12월19일 재판부는 피고인들에게 모두 무죄를 선고했고 2016년 대법원에서 검찰의 상고가 기각되면서 피고인들은 39년간 무겁게 지고 있던 죄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신간 '발부리 아래의 돌'(우리학교 펴냄)은 '재일동포 간첩단 조작 사건'의 피해자 중 한 명인 고(故) 김추백씨의 딸 김호정씨가 사건의 진실 규명을 위해 노력했던 시간을 기록한 책이다.
저자는 아홉 살이던 1977년 아버지가 낯선 사람들이 타고 온 검은 차에 태워져 집을 떠난 뒤 다시 아버지를 보지 못했다. 김추백씨는 1979년 5월 만기 1년3개월을 앞두고 교도소에서 노역하다 쓰러져 형집행정지로 출소했지만 열흘 만에 사망했다.
아버지가 병 요양 중에 숨진 것으로 알고 있던 저자는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야 아버지가 왜 죽었는지를 알게 됐고 진실을 찾기 위한 여정을 시작했다.
책은 김씨가 2006년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 진실 규명을 신청한 것을 시작으로 10년간의 세월을 거쳐 2016년 재심에서 무죄 확정을 받기까지 과정을 시간순으로 담았다.
저자는 위원회에 진실 규명 신청의 근거를 마련하고 무죄의 증거를 찾기 위해 피해자 한 명 한 명을 만나 증언들을 기록하고 기사와 관련 자료들을 꼼꼼히 찾았다. 책에는 김씨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 외에도 피해자 11명 한명 한명 모두의 사연과 수사기록과 재판 내용 등도 수록됐다.
김씨가 책을 쓴 것은 피해자들의 이야기가 '특별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닌 '누구나'의 이야기로, 과거사가 아닌 지금의 이야기로 기억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1997년 독일 예술가 귄터 뎀니히가 시작한 프로젝트에서 따온 책 제목에도 이런 마음이 담겨있다.
'발부리 아래의 돌 프로젝트'는 나치에 탄압받고 희생된 유대인들을 기리기 위해 그들이 살았던 집이나 실종 장소에 희생자의 이름과 태어난 해, 사망일 혹은 추방일 등을 새겨놓는 프로젝트다. 길을 걷다가 이 '걸림돌'에 발을 헛디딘 사람들이 잠시나마 그들의 삶을 생각해보자는 취지로 시작됐으며 지금까지 유럽 18개국에 5만3천여개의 '걸림돌'이 놓이게 됐다고 한다. 384쪽. 1만8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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