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30년전 레이건이 서울올림픽 활용했듯 평창 활용해야"(종합)

입력 2018-01-10 15:12
"트럼프, 30년전 레이건이 서울올림픽 활용했듯 평창 활용해야"(종합)

美전문가들 "북한위기 상황 두 올림픽 유사성…한·미 대북전략 새로 조율 필요"

"벼랑 끝에서 물러서는 출구 마련 가능…평창 기회 못 살리면 창 닫힌다"

(워싱턴=연합뉴스) 송수경 특파원 =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한반도에 해빙 국면이 조성될지 관심을 끄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1988 서울 하계올림픽 개최를 매개로 북미 관계개선에 나섰던 로널드 레이건 정부의 선례를 따라야 한다는 제안이 나왔다.

미 국무부 정보조사국 북한정보분석관을 지낸 로버트 칼린 국제안보협력센터(CISAC) 객원 연구원과 역시 국무부 북한 담당관으로 북미 대화 경험이 풍부한 조엘 위트 존스홉킨스대 한미연구소 선임연구원은 8일(현지시간) 시사지 애틀랜틱에 기고한 '올림픽이 어떻게 북한 위기를 완화할 수 있나'라는 글을 통해 30년 시차를 둔 두 올림픽 상황의 유사성을 비교하며 이같이 주장했다.

이들은 두 올림픽을 둘러싼 상황의 "두드러진 유사성"으로 한·미 정부가 올림픽대회에 앞서 충돌에서 대화로 나아가도록 전략을 조율할 기회가 있는 점을 들었다.

이들은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1987년 북한의 대한항공 폭파 테러가 있었음에도 불과 1년만인 1988년 12월 미국과 북한이 중국에서 공식 대화를 시작한 사실을 지적하며 "레이건 같은 냉전 매파가 이런 일을 해낼 수 있었던 것은 신중한 외교와 서울올림픽의 매우 영리한 활용 결과"라고 설명했다.

1988년 2월 취임한 노태우 당시 대통령은 올림픽이 무사히 끝나면 북한과 대화한다는 새로운 대북 접근법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마침 미국의 레이건 행정부도 한국전 이래 대북 고립화 정책이 북한의 위협을 키울 뿐이라는 판단에서 대북 접근으로 정책 전환을 검토하면서 이미 1987년엔 한국 정부와 관련 논의를 시작했던 터였다. 노태우 구상이 자랄 토양이 마련된 셈이다.

칼린 등이 기밀 해제된 미 정부 문서와 전직 관리들과 인터뷰 등을 토대로 분석한 내용에 따르면 레이건 행정부의 새로운 대북 관여 전략은 ▲ 북한인들의 비공식·비정부 차원의 미국 방문 장려 ▲ 미국 시민의 북한 여행 비용 규제 완화 ▲ 대북 인도주의 물자 수출의 제한적 허용 ▲ 미 국무부 관리가 북한 외교관과 실질적 논의를 할 수 있도록 허용 등 4가지를 골자로 했다.

'신중한 방안'이라고 명명된 이 조치들은 1대 1로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것을 북한에 요구하지 않고, 북한이 올림픽을 방해하지만 않는다면 시행토록 했으며, 실제로 올림픽 후 시행됐다.

레이건 행정부가 북한에 요구한 것은 ▲ 남북 대화의 가시적 진전 ▲ 한국전 때 실종 미군의 유해 송환 ▲ 반미 선전 중단 ▲ 비무장지대(DMZ) 신뢰 구축 조치 이행 ▲ 국가 지원 테러리즘 포기에 대한 신뢰할 만한 확약 등 5가지였고, 이를 중국을 통해 전달했다.

레이건 대통령의 이 정책이 1992년 아널드 캔터-김용순간 핵회담의 기초를 닦았고, 이 회담은 1994년 제네바 북미 합의로 이어져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멈추도록 했다. 레이건의 대북 정책은 또한 1990년대 초 한국이 북한과 다수의 역사적인 양자 합의를 통해 긴장을 완화하는 데 기여했다고 칼린 등은 말했다.

칼린 등은 김정은이 평창올림픽을 방해하지 않는 것을 전제로 트럼프 대통령이 레이건의 선례를 따르기로 할 경우 지난주 발표된 한·미 군사훈련 연기가 "유용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며, 제재를 통한 대북 "최대의 압박"을 유지하되 "외교의 문이 열리고 있다는 신호"를 계속 김정은에게 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김정은과 대화용의 표명을 그 신호의 하나로 평가하면서 김정은 개인에 대한 모욕주기를 중단하면 "더 큰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대북 제재 대상이 아닌 유엔과 민간단체의 대북 인도적 지원마저 국제사회의 제재 강화에 위축받고 있는 문제를 풀어주고 뉴욕을 중심으로 반경 40km 이내로 제한된 유엔 주재 북한 외교관들의 활동에 대한 제약을 완화해주는 방안도 제시했다.

대신 북한에 요구할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조치들로는, 북한에 억류된 미국인 3명에 대한 평양주재 스웨덴 외교관의 접견권 보장, 남북 대화 특히 군사회담에서 진전을 위한 북한의 건설적 역할, 생화학·핵 무기및 핵물질 관련 행동을 포함한 국제 테러리즘에 반대한다는 명시적 선언 등이 있다고 이들은 예시했다.

이들은 "이러한 조치들이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를 직접 해결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현 대북 정책도 마찬가지"라며 "우선 우리 모두가 (벼랑) 끝에서 물러나는 코스에 진입하는 게 목적"이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레이건의 접근법은 오랜 기간 북한과 생산적인 상호작용을 일으키는 본래의 목적을 달성했다"며 "평창올림픽이 다시 한 번 기회를 줬다. 한국과 미국이 88올림픽 때의 교훈을 무시하면 창은 닫혀 버리고 마지막 선수가 불을 끄고 선수촌을 떠날 때 현존하는 기회는 사라지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hanks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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