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가빴던 새해 첫 9일…평창 참가 확정까지 일사천리
(서울=연합뉴스) 이영재 기자 = 꽁꽁 얼어붙었던 남북관계가 급속히 해빙되고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가 확정되기까지는 열흘도 걸리지 않았다.
판문점에서 9일 열린 남북 고위급회담에서 북측은 평창올림픽에 고위급 대표단, 민족올림픽위원회 대표단, 선수단, 응원단, 예술단, 참관단, 태권도 시범단, 기자단 등을 파견키로 했고, 우리측은 필요한 편의를 보장하기로 했다.
남북 양측은 이런 내용을 포함한 총 3개항의 공동보도문을 발표하고 앞으로 관계 개선을 위한 남북 고위급회담과 함께 각 분야의 회담들도 개최하기로 했다.
작년 말까지만 해도 살얼음판을 걷던 남북관계가 반전을 맞은 계기는 지난 1일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신년사였다.
김 위원장은 신년사에서 평창올림픽이 '민족의 위상을 과시하는 좋은 계기'라며 성공을 기원하고 북한 대표단 파견 의사를 내비쳤다.
북한의 신년사에서 남북관계 개선 제의는 거의 의례적인 것이지만, 평창올림픽이라는 구체적인 계기를 꺼낸 김 위원장의 제의는 주목할 만했다.
다음 날인 2일 문재인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북한 대표단의 평창올림픽 참가를 실현할 수 있도록 후속 방안을 조속히 마련하라"고 지시했고, 같은 날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남북 고위급 당국회담을 제의했다.
3일에는 북한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위원장이 조선중앙TV에 나와 판문점 채널 복원 의사를 밝히며 평창올림픽 참가를 위한 대화에 나서겠다고 화답했다.
이어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4일 밤 전화통화에서 한반도 정세 변화를 논의하고 한미 연합훈련을 평창올림픽이 끝난 다음으로 연기하는 데 합의해 평화 무드에 힘을 보탰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6일(현지시간)에는 남북 대화에 대해 "100% 지지한다"며 미국이 남북 대화를 불편하게 여길 수 있다는 일각의 우려를 불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과 직접 대화할 가능성을 내비치기도 했다.
북한은 한미 연합훈련 연기가 발표된 뒤인 5일 우리 정부의 고위급회담 제의를 수락했고, 우리 정부는 다음 날 조명균 장관을 수석대표로 하는 대표단 5명의 명단을 북측에 보냈다.
이에 대해 북한은 하루 뒤인 7일 리선권 위원장을 수석대표로 하는 대표단 5명의 명단을 남측에 통보했다. 회담 날짜와 장소, 대표단의 격 등을 둘러싼 밀고 당기기도 없이 남북한의 대화 준비는 거침없었다.
북한이 지난해 핵·미사일 개발에 주력한 데 이어 올해 대화에 나선 것은 전략적 시간표에 따른 것이라는 관측이 많지만, 평창올림픽이 촉매 역할을 한 것은 부인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북한은 아무리 대화를 하고 싶어도 적절한 명분이 없었다면 대화 테이블로 나오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정치와는 무관한 스포츠 행사인 평창올림픽은 북한에 대화의 명분을 제공했다"고 평가했다.
평창올림픽을 매개로 시작한 남북 대화를 한반도 평화 정착의 실질적인 계기로 만드는 것은 우리 정부에 주어진 과제다.
양 교수는 "북한이 대화에 나선 만큼, 당분간 도발을 중단할 것으로 본다"며 "북한은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이를 통해 북미 접촉도 시도하는 그림을 그리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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