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전 회화 전시하는 곽덕준 "아팠던 청년 시절의 표현"

입력 2018-01-09 15:50
50년전 회화 전시하는 곽덕준 "아팠던 청년 시절의 표현"

갤러리현대서 3년 만에 국내 개인전…회화·소묘 54점 출품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죽음의 문턱에서 가까스로 돌아온 나는 물욕에 의지하는 대신 나라는 존재로부터 나올 수밖에 없는 인생의 증표를 추구하기로 결심했다. 그것이 바로 내가 좋아하는 그림이었다."

일본 교토에서 출생해 80여 년간 살고 있는 재일동포 원로 작가 곽덕준(81)이 50년 전인 1960년대에 그렸던 회화와 소묘를 선보이는 개인전 '1960년대 회화 - 살을 에는 듯한 시선'을 서울 종로구 갤러리현대에서 10일부터 연다.

3년 전 같은 장소에서 '타임리스'라는 제목으로 개최된 곽덕준 개인전이 그간의 활동을 아우르는 다양한 작품으로 꾸며졌다면, 이번 전시에서는 국내에서는 최초로 작가가 청년 시절에 그린 1960년대 작품에만 집중한다.

전시에 나온 작품은 1960년대 후반에 제작된 회화 20점과 소묘 34점. 1층에는 1966년 작품, 2층에는 1967년 작품, 지하 1층에는 1968∼1969년 작품이 각각 걸렸다. 시간이 흐를수록 회화의 색감이 밝아지는 점이 확연히 느껴진다. 지하 1층의 그림은 가우디가 설계한 스페인 바르셀로나 구엘 공원처럼 알록달록하다.

그는 석고와 부드러운 석회질 암석인 호분을 혼합해 두꺼운 층을 만들어 채색하고, 이를 본드로 코팅한 뒤 못으로 긁는 방법으로 회화를 제작했다.



작가 곽덕준에게 1970년은 분기점이 된 해다. 이때를 기점으로 그는 선호하는 작품 장르와 표현 방식을 완전히 바꿨다.

그는 교토의 한 고등학교에서 일본화를 배운 뒤 일본의 전통 옷인 기모노 염색을 하면서 생계를 이어갔으나, 23세에 결핵에 걸리면서 한쪽 폐를 거의 절제하는 수술을 받았다.

이후 3년간 병상에 있어야만 했던 그는 자신의 내면세계를 들여다보려고 노력했고, 많은 소묘를 그렸다. 이 가운데 정확히 37점이 회화로 표현됐다. 그는 건강을 회복한 1969년에 회화 작업을 포기했고, 이후에는 사진·영상·설치 작업으로 눈을 돌렸다.

갤러리현대에서 9일 기자와 만난 작가는 "1969년까지는 개인의 내면을 어떻게 표출해야 하는지 고민했다면, 1970년부터는 누구에게나 통용되는 보편적 개념을 전달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1980년대 추상미술에 대한 반동으로 생겨난 세계적 미술 흐름인 신표현주의에 대해 "유행을 좇고 싶지 않았다"며 "나만의 스타일을 고수하면서 조용히 시간이 흐르길 바랐다"고 털어놨다.

재일동포라는 신분 탓에 일본에서 영원한 이방인일 수밖에 없었던 성장 과정도 그의 예술관에 영향을 미쳤다.

작가는 자신의 과거를 '신경이 곤두선 고양이', '뿌리를 내리지 않고 꽃을 피운 식물'로 비유한 뒤 "정체성을 크게 의식하지는 않았지만, 재일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이 없었다면 나만의 예술 행위가 성립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작가가 구상하는 다음 작품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소재로 한 '대통령과 곽' 연작이다. 대통령과 곽은 미국의 역대 대통령이 표지에 실린 타임지와 거울에 비친 작가의 모습을 결합한 작품이다.

전시는 2월 18일까지. 문의 ☎ 02-2287-3500.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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