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되는 생방송 드라마] "편성·캐스팅·제작비 때문"①

입력 2018-01-07 08:30
수정 2018-01-07 09:27
[계속되는 생방송 드라마] "편성·캐스팅·제작비 때문"①

십수년째 '반 사전제작' 외치지만 실행으로 옮기기 어려워

시청률도 주요 이유…사전제작 리스크 높고, 성공한 예 드물어

<※편집자 주 = tvN 주말극 '화유기'가 지난달 최악의 방송사고 내면서 한국 특유의 '생방송 드라마' 제작 현실이 다시 뜨거운 감자가 됐습니다. 설상가상, 제작 과정에서 스태프의 추락사고까지 발생해 방송사의 갑질과 열악한 스태프 처우 등에도 비난의 화살이 쏠리고 있습니다. 한국 드라마는 지난 수십년간 '생방송 드라마'로 제작돼오며 많은 문제점을 노출했지만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습니다. '화유기' 사태를 계기로 '생방송 드라마가 이어지는 이유는 무엇이고, 대안은 없는지 3꼭지로 나눠 살펴봅니다.>



(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 '생방송 드라마'란 촬영, 편집, 후반작업 등 충분한 시간을 갖고 만들어야 하는 드라마를 마치 생방송처럼 긴박하고 아슬아슬하게 제작해 방송하는 한국 드라마의 웃지 못할 상황을 비유하는 말이다. 대개 드라마의 마지막회가 방송되는 날까지 촬영이 진행된다. 여차하면 방송사고가 날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국내 방송 초창기에는 말 그대로 '생방송 드라마'가 있었다. 녹화 시스템이 없던 1950~60년대는 배우들이 연극처럼 실시간으로 드라마 연기를 펼치는 모습이 그대로 방송으로 나갔다. 필름 가격이 비싸서 녹화도 못하고, 야외 촬영도 돈이 없어서 못했다. 그래서 오로지 방송국 세트 안에서 뉴스처럼 실시간으로 드라마 연기를 펼쳤고, NG가 나도 수습하지 못했으니 당연히 방송사고도 많았다.

하지만 기술도 좋아지고, 야외 촬영은 물론 해외 촬영도 많이 하는 상황으로 바뀌어서도 한국 드라마는 늘 시간에 쫓겨 제작되면서 심심치 않게 사고를 냈다. 왜일까.



◇ 편성·캐스팅·제작비에 좌지우지

가장 근본적인 이유로는 편성과 캐스팅, 제작비가 꼽힌다. 방송사들이 편성을 빨리 확정 짓지 못하면서 드라마 제작에 빨리 들어가지 못하고, 또 드라마 제작 편수가 점점 늘어나면서 스타 캐스팅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것 역시 '생방송 드라마'를 양산한다.

운 좋게 일찌감치 스타캐스팅에 성공해도, 사전제작을 할 경우는 '생방송 드라마'보다 제작비가 훨씬 많이 들어간다. 연출자는 백이면 백 더 잘 찍고 싶어 해 촬영 일수가 늘어나게 되고, 자연히 제작비가 상승한다. '시간'은 곧 돈인 것이다. 또 그렇게 다 만들어놓았는데 방송사 편성을 받지 못하는 리스크도 있다. 제작시점과 방송시점의 간극이 클수록 작품의 신선도는 떨어지고 이는 시청률로 직결된다. LTE의 속도에 익숙한 다이내믹 코리아에서 철 지난 드라마의 시장성은 급전직하한다. '버디버디' '탐나는 도다' 등의 작품이 그런 경우다.

그나마 지금껏 드라마의 방송사고는 아슬아슬하게 버티다 대개 마지막회에서 발생하고는 했다. SBS TV '시크릿 가든', '싸인', '펀치' 등이 마지막회에서 음향 사고, 화면 사고 등을 일으켜 빈축을 샀다. 촬영까지는 겨우 마쳤지만 방송 시간까지 편집을 제대로 하지 못해 발생한 사고들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 세 작품 모두 높은 시청률과 화제 속에 질주했다는 점이다. 마지막회에서 사고가 나기는 했지만 결과적으로 이 작품들은 '명작' '히트작'으로 남았다. 오늘도 '생방송 드라마'가 생명력을 발휘하는 '든든한 사례'(?)다.

드라마 사랑이 유별난 한국 시청자들이 실시간으로 드라마와 호흡하길 즐기고, 제작진이 그러한 시청자의 반응을 그러모아 작품에 반영하려고 하는 것 역시 '생방송 드라마'를 만든다. 다 만들어놓은 드라마에는 시청자가 개입할 여지가 없다.

실시간 시청자와 호흡하길 바라는 것은 광고주도 마찬가지다. 드라마에 협찬과 간접광고(PPL)를 하는 광고주들도 사전제작보다는 바로 찍어 내보내는 드라마를 선호한다.



◇ 해결책으로 '반 사전제작' 외치지만

해결책으로 십수년째 방송가에서는 '반(半) 사전제작'을 외친다. 편성을 빨리 확정해 전체의 절반 정도는 만들어놓은 상태에서 방송을 시작하자는 것이다. 완전한 사전제작이 아니니 시청자 반응을 후반부에 반영할 수도 있고, 시간에 쫓겨 일어나는 각종 방송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반 사전제작 역시 돈이 문제다. 촬영을 빨리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그만큼 촬영 일수가 많아져 미술비 등 제작비가 상승한다. 제작비가 많이 들어도 이같은 반 사전제작이 정착하려면 성공작이 많이 나오는 수밖에 없다.

김영섭 SBS 드라마본부장은 "반 사전제작이든, 사전제작이든 일반 드라마보다 제작비가 많이 들어간다"며 "우리의 경우는 1~2부 촬영에 20일 이상을 줄 수가 없다"고 밝혔다.

이어 "그럼에도 반 사전제작을 하려고 많이 노력하고 있지만 주연 배우들이 회당 수천만원에서 1억원을 받고, 작가료도 급등한 상황에서 제작비로 쓸 돈이 줄어드니 촬영일 수를 늘리는 데 한계가 있다"고 토로했다.

2014년 OCN '나쁜 녀석들', 2016년 tvN '치즈인더트랩'이 반 사전제작으로 성공했다. 모든 촬영이 방송 도중 끝나면서 여유 있게 후반작업을 했고, 시청률에서도 좋은 성과를 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둘 다 '자금력'으로 무장한 CJ E&M 작품이다. 반 사전제작조차 어려운 이유다.



2016년 '박보검 신드롬'을 일으킨 KBS 2TV '구르미 그린 달빛'도 마지막회 방송날 오후까지 촬영을 진행했고, 시청률 40%를 넘어서 질주 중인 KBS 2TV 주말극 '황금빛 내 인생'도 그 주 방송분을 그 주 찍어 내보내고 있다.

2016년 사전제작 작품들이 잇따라 선보였던 것은 반짝 중국 특수의 결과였다. 사전 심의가 있는 중국에 수출하기 위해서는 완제품을 납품해야 하기에 사전제작을 했다. 그러나 KBS 2TV '태양의 후예'만 대박을 쳤을 뿐, KBS 2TV '함부로 애틋하게'나 SBS TV '달의 연인 - 보보경심 려'는 혹평 속에 고전했다.

지난해에는 JTBC '품위 있는 그녀'와 '맨투맨', tvN '비밀의 숲'이 사전제작을 통해 성공했다. 반면, tvN '내일 그대와', KBS 2TV '화랑', SBS TV '사임당, 빛의 일기'와 '엽기적인 그녀' 등은 스타 캐스팅에도 불구하고 시청률과 작품성 모두에서 큰 아쉬움을 남겼다. (②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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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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