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패거리 정치' 친박 몰락의 교훈

입력 2018-01-04 17:29
수정 2018-01-05 08:47
[연합시론] '패거리 정치' 친박 몰락의 교훈

(서울=연합뉴스) 친박(친박근혜) 정치인 가운데 핵심으로 꼽히던 자유한국당 최경환 의원이 4일 구속됐다. 2014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재직하면서 국가정보원으로부터 특수활동비 1억을 상납받고 국정원의 예산 편성에 도움을 준 혐의다. 또 친박계 중진인 같은 당 이우현 의원도 2014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공천 헌금으로 의심되는 5억5천만 원을 수수하는 등 지역 정치권 인사나 사업가로부터 10억 원이 넘는 불법 정치자금과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두 의원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구속된 현역의원으로 기록됐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바른정당은 논평을 내고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며 철저한 진상 규명과 엄벌을 요구했다. 한국당은 별도의 논평을 내지 않았다.

최 의원의 구속은 친박세력의 정치적 몰락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장면이었다. 경제관료 출신으로 17대부터 20대까지 4차례 연속으로 지역구에서 당선된 최 의원은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친박계의 구심점 역할을 해왔다. 최 의원은 박 전 대통령이 대권에 처음 도전했던 2007년 한나라당(한국당 전신) 대선후보 경선 때 캠프 종합상황실장을 맡았고,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지식경제부 장관을 지내기도 했다. 또 2012년 대선 때에는 박근혜 대선후보 비서실장을 거쳐 박근혜 정부에서 집권여당 원내대표와 경제팀 수장을 지냈다. 하지만 최 의원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사태와 19대 대선에 따른 정권교체를 거치면서 정치적 위기를 맞게 된다. 홍준표 대표가 7·4 전당대회에서 당권을 잡은 뒤 '해당 행위와 민심이반 책임'을 앞세워 친박세력 청산 드라이브를 걸었고, 최 의원은 지난해 10월 20일 박 전 대통령, 그리고 친박계 좌장격인 서청원 의원과 함께 당 윤리위원회로부터 탈당 권유 징계를 받게 된다. 이후 박 전 대통령은 '탈당 권유를 받은 뒤 10일 이내에 탈당 신고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지체 없이 제명처분한다'는 한국당 당헌·당규에 따라 출당 조치를 당했다. 최 의원은 현역의원을 출당시키려면 의총에서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을 받아야 하는 당헌·당규 때문에 아직 출당 조치를 당하지는 않았으나 국정원 특수활동비 상납받은 혐의로 구속되면서 정치적으로 재기하기 힘든 지경에 처했다.

앞서 '박근혜의 입'으로 불렸던 이정현 의원이 19대 대선 전인 지난해 1월 친박청산 바람에 밀려 새누리당(한국당 전신)을 탈당하는 등 친박세력의 정치적 몰락은 예견된 수순이었다. 홍 대표는 지난해 12월 당무 감사를 통해 당협위원장을 물갈이하면서 서청원(경기 화성시갑), 유기준(부산 서구동구) 의원 등 친박계 현역 및 원외 인사들을 다수 교체 대상에 포함했다. 바른정당에서 되돌아온 김성태 의원이 지난해 12월 12일 범 친박계인 정우택 원내대표 후임으로 원내대표에 선출된 것을 계기로 친박계는 한국당 지도부에서도 대거 퇴장했다. 현재 당 지도부에 포진한 친박계는 김태흠 최고위원 정도에 불과하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패권세력을 형성해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해온 친박세력은 사실상 정치적으로 소멸했다. 친박은 특정한 정치적 이념이나 가치, 비전, 정책을 공유하는 정치세력이 아니라 특정 권력자를 중심으로 뭉친 '패거리 정치집단'의 성격이 강했다. 자기들끼리 똘똘 뭉쳐 기득권에 집착하는 수구적 정치행태를 보여왔음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는 박 전 대통령이 최순실과 공모해 헌법을 무시하고 국정농단을 한 혐의로 헌정사상 처음 탄핵을 당한 데서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친박이 진정 국민을 위한 정치를 지향했다면, 권력자의 눈치를 살피지 않고 국민만 보고 정치를 했다면 국정농단 사태를 막을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친박은 박근혜 정권에서 당과 정부의 요직을 독차지하고 호가호위하면서 권력의 과실을 즐겼다. 박 전 대통령을 제대로 보필하지도 못했으면서 박 전 대통령의 실정에 대해선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으려는 정치행태를 보였다. 이제 국민과 나라의 발전보다 특정 권력자에 기대서 개인이나 계파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패거리 정치세력은 이 땅에서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친박세력의 몰락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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