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장에 밥 비벼 먹던' 3남매, 장난감 안고 세상과 작별(종합)
3남매 주변인들 '가난했지만 부모가 아이들을 끔찍이 아꼈다' 눈물
(광주=연합뉴스) 박철홍 기자 = "할아버지, 할머니 배고파…배고파…."
엄마가 잘 못 끈 담뱃불에서 시작된 화마에 숨진 4세·2세 아들, 15개월 딸의 장례가 3일 치러졌다.
유족들은 세 남매를 화장하며 아이들의 손때 묻은 장난감을 함께 보냈다.
중실화죄 등으로 구속된 엄마는 아이들의 장례가 이날 치러지는지도 모르고 현장감식을 위해 화마로 처참하게 변한 자녀들과 함께 살던 집을 다시 찾아 때늦은 반성과 그리움의 눈물을 흘렸다.
세 남매의 친가 쪽과 인연이 있는 한 지인 A(54·여)씨는 세 남매 중 막내딸의 돌인 지난해 9월 세 남매의 집을 아이들의 할아버지·할머니와 함께 찾았다.
막내 손녀의 돌을 맞아 집에는 외할아버지·외할머니도 와 있었다.
전날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는 아이들은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얼굴을 보고 "할아버지, 할머니 배고파요"라고 응석을 부렸다.
눈물부터 쏟아졌다.
당시 22세였던 엄마(정모씨)가 남편과 함께 세 남매를 키우던 집안에는 먹을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냉장고는 텅텅 비었고 집안에는 흔한 라면도 하나도 남아있질 않았다.
정씨는 막내딸을 낳고 다니던 콜센터 직장을 관뒀고 피시방 아르바이트 등을 하던 남편은 다리를 다쳐 일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양가 부모가 능력이 닿는 대로 집도 구해주고 자녀들의 부양을 돕는 등 노력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정씨는 친정집에서 용돈 받아 쌀과 간장을 조금씩 사 맨밥에 간장을 비벼 아이들을 먹였다.
정씨는 자녀를 굶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부모로서 견딜 수 없었는지 '차라리 고아원에 있는 아이들은 밥이라도 굶지 않는다'고 시부모와 친정부모 앞에서 하소연하며 울었다.
정씨는 화재사건 초기 일부러 불을 질러 아이들을 죽게 했다는 의심을 받았다.
그러나 주변인들은 정씨와 이혼한 전 남편이 가난했지만, 아이들은 끔찍이 아꼈다는 증언을 쏟아내며 안타까운 마음에 울었다.
주변인 증언에 따르면 세 남매의 부모는 중학교 때부터 만났다.
그러던 중 고등학생 시절 덜컥 첫애를 임신했다.
2013년 첫아들을 낳고 2015년에 둘째 아들도 나았다. 그해에는 뒤늦은 결혼식도 올렸다.
부부는 나름으로 열심히 자녀를 키우려고 노력한 것으로 보인다.
엄마 정씨는 콜센터에서 일했고 아버지는 공단, 술집, 피시방 등에서 아르바이트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려 했다.
그러다 막내딸을 임신하고 낳으면서 정씨는 직장을 다닐 수 없게 됐고, 아빠는 아르바이트하고 퇴근하다가 다리를 다쳐 더는 일을 하기도 힘들었다.
생계마저 어려워지자 부부는 지난해 1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신청을 했지만, 부양 능력이 있는 부부의 부모가 있다는 이유로 탈락했다.
어쩔 수 없이 긴급생활복지 지원을 신청해 수개월 동안 130여만원의 지원을 받았지만 오래가지는 못했다.
정씨 부부는 성격 차이로 관계가 나빠져 이혼소송을 거쳐 지난해 12월 27일 결국 이혼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혼한 남편은 자녀 곁을 떠나지 않고 함께 지냈다.
그러던 지난 31일 새벽 아빠가 답답한 마음을 달래러 피시방으로 외출한 사이, 술 취한 엄마의 담뱃불에 세 남매는 세상을 떠났다.
불우한 가정환경이었지만, 부부는 세 남매를 끔찍이 아꼈다.
정부 보육 지원금으로 첫째는 유치원에 둘째는 어린이집에 다녔으나 교재비 등은 몇 달간 밀렸다.
유치원 관계자가 "불우한 가정환경이었지만, 부부가 아이들은 끔찍이 아꼈다"고 떠올리며 눈물을 소매로 훔쳤다고 경찰은 전했다.
세 남매의 할아버지는 "어린 나이에 애를 낳아 손자들을 거의 키우다시피 했다"며 "할아버지, 할아버지 부르며 뛰어오는 손자들의 모습이 선하다"고 오열했다.
세 남매의 아빠도 "애들이 아빠, 아빠라고 하는 모습이 어제처럼 선하다"며 "내가 옆에 있었더라면 애들을 구할 수 있었을 텐데"라며 땅을 치며 한탄했다.
비록 실수로 불을 질러 아이들을 죽게 한 죄인이지만 정씨는 정작 아이들의 장례가 이날 치러진다는 소식을 알지도 못한 채 "내가 죽었어야 했다"고 반성의 눈물을 계속 흘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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