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절한 삶 노래한 한하운 시인을 돌아본다
연구서 '다시 보는 한하운의 삶과 문학' 출간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쓰레기 통과/쓰레기 통과 나란히 앉아서/밤을 새운다.//눈 깜박하는 사이에/죽어버리는 것만 같었다.//눈 깜박하는 사이에/아직도 살아있는 목숨이 굼틀 만져진다//배꼽아래 손을 넣으면/三十七度(삼십칠도)의 體溫(체온)이/한마리의 썩어가는 생선처럼 밍클 쥐여진다.//아 하나밖에 없는/나에게 나의 목숨은/아직도 하늘에 별처럼 또렷한 것이냐."
한하운 시인의 '목숨'이란 시다. 시인은 피부 조직이 손상되는 증상이 나타나는 한센병을 앓았으며 투병 와중에 쓴 슬픈 서정시 '보리피리', '파랑새' 등이 교과서에 실려 널리 알려졌다.
많은 사람이 시인의 이름을 알고 있지만, 그 유명세에 비해 시인에 관한 연구 자료나 생애, 문학을 다룬 책은 변변히 없다. 왜곡된 편견으로 사람들이 접촉을 기피한 한센인이었던 탓이 크다. 그는 우리 사회에서 아주 소외된 주변부의 그늘에 머물다 생을 마감했고, 문단에서도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다.
그런 악조건에도 그의 시가 교과서에 실리고 많은 사람의 뇌리에 남아있는 것은 누구보다 고통스러운 삶 속에서도 끝내 놓을 수 없는 생의 의지를 노래한 시들이 큰 울림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안타까움을 남긴 시인의 삶과 문학을 제대로 돌아보려는 시도가 처음 이뤄져 그 결과물이 책으로 나왔다.
인천 부평역사박물관이 이 지역에서 1949년부터 1975년 별세할 때까지 살았던 한하운 시인을 기리는 작업에 착수해 흩어져 있던 연구 논문을 모으고 새로운 연구·조사 내용을 받아 '다시 보는 한하운의 삶과 문학- 나병과 좌익, 이중의 배제를 넘는 생의 노래'(소명출판)를 출간했다.
이 책은 지난해 9월 인천 부평구에서 '한하운, 그의 삶과 문학'이란 주제로 열린 학술심포지엄에서 발표된 고은 시인의 축사와 최원식 한국작가회의 이사장의 기조강연, 김현석 인천민속학회 이사, 박연희 동국대 한국문학연구소 교수, 고봉준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최옥산 중국 대외경제무역대학교 교수, 요시카와 나기 일본 릿쿄대학 강사 등의 발표 내용을 묶은 것이다. 여기에 정우택 성균관대 국어국문과 교수와 박민규 부산외국어대 조교수, 최서윤 한국방송통신대 강사의 글이 추가됐다.
최원식 이사장은 한하운 시인을 "우리 시 최초의 하위자(subaltern)"로 명명하며 그의 시 중에서도 '전라도길'을 압권으로 꼽는다. 한센인 집단 수용 지역인 소록도로 가는 길을 표현한 시다.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숨막히는 더위뿐이더라"로 시작해 "신을 벗으면/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발가락이 또 한 개 없다"고 고백하는 이 시를 두고 "그 팍팍한 도정은 우리 시가 일찍이 가지 못한 길이자, 하운이 새로이 연 지옥의 길이다. 하위자의 침묵에 혀를 단 미답의 길"이라고 평했다.
정우택 교수는 한하운 시인이 '데모'라는 시 때문에 좌익으로 몰려 고초를 겪은 일을 자세히 소개한다. 이 시는 "뛰어들고 싶어라"로 시작해 "모두들 성한 사람들 저이끼리만/쌀을 달라! 자유를 달라!는/아우성소리 바다소리.//아 바다소리와 함께 부서지고싶어라/죽고 싶어라 죽고 싶어라/문둥이는 서서 울고 데모는 가고."라며 끝난다. 시위 대열에도 낄 수 없을 정도로 소외되고 배제된 '문둥이'의 처지를 그린 시임에도 제목과 첫 행만으로 억울하게 빨갱이로 매도된 것이다.
김현석 이사는 시인의 연대기를 고찰하면서 그가 남긴 '나의 슬픈 반생기' 속 한 구절을 소개한다.
"이렇게 컴컴한 벽장 속에서 울다가 잠이 들면 손님이 간 후에 어머니는 손님이 갔다고 벽장문을 열어서 나를 부르는 것이었다. 내가 대답이 없으면 쭈그리고 자는 나를 깨우고는 어머니도 울고 나도 울곤 하였다."
최옥산 교수와 요시카와 나기는 시인이 자신의 연대기에 밝힌 중국 베이징 농학원과 일본 세이케이고등학교 수료 등 학력에 왜곡되고 거짓인 부분이 있다고 지적한다. 사회적으로 낮은 위치에 있던 시인이 해외 유학 이력을 다소 부풀렸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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