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부터 외국 정부·수반 모욕죄 독일 형법에서 없어져
독일 공영방송 "대통령들에겐 나쁘지만, 시민들에겐 좋은 날"
(서울=연합뉴스) 최병국 기자 = "오늘은 대통령들에겐 나쁘지만, 시민들에겐 좋은 날."
독일 공영 도이체벨레 방송은 1일(현지시간) 이날부터 이른바 '불경죄'인 독일 형법 103조가 "너무 늦긴 했지만, 마침내 사라졌다"며 이같이 밝혔다.
마르틴 무노 보도국장은 칼럼을 통해 민주주의 국가에서 '일반적으로는' 법앞에 만인이 평등하고 이는 독일 헌법에도 보장돼 있지만 '실제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더러 있다면서 이제야 시대착오적 법규가 폐기된 것을 환영했다.
독일 형법 103조는 외국 국가기관이나 대표(국가 또는 정부 수반)를 비방·모욕하는 경우 최대 5년형까지 징역형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는 권위주의 국가 시절인 1871년 제정된 법률의 유산이다.
무노 국장은 일반인을 모욕한 사람은 유죄 판결 시 통상 벌금만 내거나 매우 드물지만 최악의 경우에도 1년 이하의 형을 선고받는다면서 이를 법 앞의 평등이나 표현의 자유를 옥죄는 악법으로 평했다.
독일 하원이 지난 6월 이 조항을 2018년부터 폐기하기로 만장일치로 합의한 계기는 한 코미디언의 터키 대통령 풍자를 둘러싼 논란이다.
코미디언 얀 뵈머만은 2016년 4월 자신이 진행하는 독일 제2공영방송 ZDF의 토크 쇼에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을 "바보, 겁쟁이, 자만심 덩어리"라며 동물들과 수간하는 인물인 듯 묘사하는 풍자 시를 읊었다.
이에 에르도안 대통령은 독일 형법 103조를 근거로 뵈머만에 대한 명예훼손혐의 형사소송 절차 진행을 독일 정부에 요구했고,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이를 받아들여 검찰의 조사가 시작됐다.
메르켈 총리는 당시 이 조항의 폐지를 추진하겠다면서도 "법치국가에서 개인의 기본권과 언론 및 예술의 자유에 영향을 미치는 일을 다루는 건 정부가 아니다"고 밝혀 검찰과 법원에 공을 떠넘겼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독일 여론은 에르도안 대통령의 독재정치를 비판하는 정당한 행위라는 주장에서부터 풍자 내용이 역겹고 수준이 낮지만 표현의 자유 침해는 용납할 수 없다는 지적에 이르기까지 다양했으나 결국 형법 103조가 문제로 지목됐다.
검찰이 범죄 혐의와 증거 불충분으로 수사 종결한데 이어 하원이 문제 조항폐기를 결정했지만, 사실 이 조항은 독일 근대 법의 역사에서 자주 수치스러운 역할을 했다면서 오래전에 폐기됐어야 했다고 무노 국장은 지적했다.
예컨대 이란의 국왕이나 칠레 아우구스트 피노체트 등에 대한 비판과 관련해 독재자를 보호하고 시위대나 언론인 처벌에 활용돼 "가해자와 피해자의 역할을 도착시켰다"는 것이다.
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나 이라크를 침공한 조지 W. 부시 미국대통령에 대한 비판 시위와 관련해 검찰이 '예방적 조치'로 수사에 착수한 일도 여러 차례 있었다고 밝혔다.
무노 국장은 "독일 사법제도를 반복적으로 독재자의 심복으로 만들고, 독일 정부를 취약하게 만든 이 조항이 없어진 것은 모두에게 정말 좋은 일"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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