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바꾸자] ⑤ 반려동물 문화, 이제 '슬기로운 공존'으로
나에겐 사랑스러운 '가족'일지라도 누군가에겐 공포의 대상
"동물 반려인·비반려인 모두 '펫티켓' 준수 문화 정착해야"
(서울=연합뉴스) 현혜란 최평천 기자 = #1. "목줄을 짧게 잡고 산책시키는데도 '도대체 개를 왜 데리고 나오는 거야'라고 핀잔을 주는 사람들을 만나면 참 불쾌하다. 나에게 강아지는 배 아파 낳은 자식과도 다를 바 없이 소중한데…. 엄마가 아이의 손을 잡고 걸어가다가 난데없이 이런 '막말'을 듣는다고 하면 얼마나 황당하겠느냐." (2년째 푸들을 키우는 직장인 정모(30)씨)
#2. "아무리 작고 귀여운 개라도 길에서 마주치면 무서워서 일단 멈칫하거나 뒷걸음질치게 된다. 목줄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줄이 길게 늘어나지 않느냐. 그럴 때 '우리 개는 안 문다', 안 무서워해도 된다'면서 유난스럽다는 눈길을 보내는 사람들을 보면 야속할 뿐이다." (어렸을 때 개에 물린 기억 때문에 개를 무서워하는 주부 장모(57)씨)
누군가에게는 그저 사랑스러운 강아지일지라도 다른 누군가에겐 공포의 대상일 수 있다. 반대로 누군가가 그토록 싫어하는 개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가족일 수 있다.
다섯 집 걸러 한 집, 국민 네 명 가운데 한 명꼴로 반려동물을 키운다는 정부 통계가 나올 정도로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그러나 반려동물을 향한 호불호는 여전히 갈려 반려인과 비(非)반려인 간 갈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2017년에는 반려동물을 둘러싼 논란이 유난히 뜨거웠다. 특히 작년 10월 유명 한식당 대표 김모(53)씨가 가수 겸 배우 최시원(30)씨 가족의 반려견인 프렌치 불도그에 물린 뒤 패혈증으로 숨졌다는 소식은 갈등의 불에 기름을 끼얹었다.
최씨의 개가 목줄을 하지 않은 채 엘리베이터 안으로 뛰어들어가는 모습이 담긴 폐쇄회로(CC)TV 영상이 공개되자 일각에서는 사람을 다치게 한 개의 주인을 강하게 처벌하고 더 나아가 해당 개를 안락사시켜야 한다는 극단적 주장까지 나왔다.
반려동물 애호가 사이에서는 억울하다는 반응도 있다. 흔치 않은 사고가 알려지면 '모든 반려견은 위험하다'는 프레임이 만들어진다는 주장이다.
다만 최시원씨 반려견 사건을 계기로 반려동물 관리와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실제 제도 개선도 이뤄졌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는 목줄·입마개 착용 등 맹견 관리 의무를 구체화하고, 이를 위반해 다른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하면 소유자에게 3년 이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하는 내용의 동물보호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각 지방자치단체는 조례 개정을 통해 시행규칙 마련에 나섰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규제를 만들고 처벌을 강화해도 반려인과 비반려인의 갈등이 하루아침에 해소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모두가 '펫티켓(펫+에티켓, 반려동물을 키울 때의 예절)'을 지키는 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박명희 건국대 수의학과 교수는 "소수의 개가 사람을 다치게 했는데 마치 모든 개가 잘못을 저지른 마냥 규제 일변도로 대책을 마련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며 "반려인과 반려견에게 펫티켓을 가르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제안했다.
반려동물을 데리고 외출할 때 목줄을 채우고 배변 봉투를 챙기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에티켓이며, 다소 사나운 개라면 '사람을 물 수 있다'는 경고가 담긴 표식을 달고 다니는 것도 필요하다고 박 교수는 조언했다.
동물보호단체 카라가 작년 11월 시작한 '모두에게 안전하고 행복한 펫티켓 문화' 캠페인도 같은 취지다. 입마개 착용 등 규제를 만들어 반려동물을 통제하는 것보다 펫티켓을 알리고 이를 지키도록 하는 게 안전사고 예방에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이 캠페인에는 반려인은 외출할 때 2m 이내 산책줄을 사용하고 반려견에게 적절한 사회화와 매너교육을 하며, 시민은 반려견을 함부로 만지거나 빤히 바라보지 않아야 한다는 내용 등이 담겼다.
최근 발생한 반려동물 논란의 대부분이 안전사고에서 비롯됐다는 점에서 반려동물이 사람을 물지 않게끔 주인이 반려동물을 교육해 사회성을 길러줘야 한다는 지적도 전문가 사이에서 공통으로 나왔다.
박명희 교수는 "개 물림 사고를 살펴보면 선천적으로 사납게 태어난 개들이 낸 경우와 보호자가 제대로 교육을 하지 않은 경우가 있다"며 "사람 및 다른 동물과도 잘 지낼 수 있도록 교육해 사회성을 길러줘야 한다"고 말했다.
채일택 동물자유연대 팀장은 "일단 입양해놓고 반려동물의 사회성 교육은 '나 몰라'라 하는 무책임한 반려인이 없도록 입양 단계에서부터 자격시험을 보는 등 조건을 까다롭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물권단체 케어의 임영기 사무국장은 "어릴 때 부모로부터 사회성을 배우지 못한 강아지에게서 공격성이 나타난다"며 "애완동물 가게에서 생후 2개월도 안 된 어린 강아지를 팔지 못하게 하는 등 근본 대책 마련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runra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