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의 드로잉 위해 20년째 하루 12시간씩 연습하죠"

입력 2017-12-28 17:10
"순간의 드로잉 위해 20년째 하루 12시간씩 연습하죠"

김종영미술관 초청전 여는 체코 작가 미하엘라 제몰리츠코바

율동감 뛰어난 추상적 드로잉 60여점 선보여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종이 위에 물결이 넘실댄다. 언뜻 보면 새 날갯짓 같기도 하다. 굴곡진 여체의 곡선도 눈에 잡힌다.

서울 종로구 평창동 김종영미술관에 전시된 체코 작가 미하엘라 제믈리츠코바의 드로잉 '누드1'이다. 발음하기 쉽지 않은 이름처럼, 체코 미술가의 작품을 서울에서 접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개관 15년 만에 처음으로 해외작가를 소개할 계획을 잡은 김종영미술관은 국내에 덜 알려진 동유럽 예술가들을 물색했고, 드로잉 작업에 매진해 온 제믈리츠코바를 점찍었다.

"대학 시절 친구들의 드로잉을 그리면서 시작했어요. 만년필과 붓, 잉크를 사용했는데 드로잉 매력에 빠지는 바람에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않게 되더라고요."

초청전 '선으로부터'를 앞두고 28일 김종영미술관에서 만난 작가는 흔히 밑그림 정도로 인식되는 드로잉의 매력을 오랫동안 극찬했다.

그는 "드로잉은 몇 가닥의 선만으로도 아이디어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라면서 "드로잉의 단순함, 특히 간결한 선을 정말 좋아한다"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에는 최근 2년간 작업한 드로잉 60여 점이 나왔다. 다양한 모습의 여체를 표현한 작품이 대다수다. 유려하게 흘러내리면서 저마다 다른 굵기를 가진 선에서는 강약과 율동감마저 느낄 수 있다.

"드로잉한지 이제 20년이 됐는데 하루에 12시간, 많으면 14시간씩 작업해요. 드로잉을 막상 하는 데는 몇 분밖에 걸리지 않지만, 그 순간을 위해서 연습을 거듭하죠. 지난 20년 안에 적당한 연습을 한 것 같네요."

작가는 여체를 주로 그리는 이유로 "여성은 남성보다 감정이 풍부하고 몸을 통해 말하는 방식도 매우 다르다. 제가 여성이어서 여체를 좀 더 잘 이해하는 점도 영향을 미친 것 같다"라고 답했다.

그는 선 굵기의 변화를 두고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종이에 점을 찍고 그 점을 따라 선을 그리는데 두꺼운 선은 좀 더 중요하고 얇은 선은 그보다는 덜 중요하다"라고 설명했다.

김종영미술관의 박춘호 학예실장은 제믈리츠코바 작품들을 두고 "인체를 소재로 한 그림이 선적인 요소를 통해 추상화가 돼가고 있음을 느낀다"라면서 "선의 리듬감에 흠뻑 취해 선묘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듯 하다"고 평했다.

김종영미술관 신관 사미루 전관에서 열리는 전시는 1월 28일까지. 문의 ☎ 02-3217-6484.

aira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