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하고 참신한 발상…문보영 시집 '책기둥'

입력 2017-12-28 10:41
기묘하고 참신한 발상…문보영 시집 '책기둥'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독특한 발상을 보여주는 젊은 시인의 재기발랄한 시집이 나왔다.

민음사가 주관하는 제36회 김수영문학상을 받은 신인 문보영(25)의 첫 시집 '책기둥'이다.

이 시인이 보여주는 세계는 처음엔 낯설고 갈수록 기묘해지는데, 하나의 이야기처럼 펼쳐지는 50편의 시들이 점점 흥미로운 그림을 만들어내며 시선을 붙든다.

시인은 반복되는 일상의 권태로움을 '옆얼굴' 같은 낯선 이미지로 묘사하며 신과 역사 같은 거시적인 존재조차도 사소하게 치부해 버린다. 그렇게 자신과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이 초연하면서도 명랑해서 젊은 감각이 느껴진다.

맨 처음 등장하는 시 '오리털파카신'과 '입장모독'은 이 세계로 들어가는 신비로운 문이다.

"신이 거대한 오리털 파카를 입고 있다 인간은 오리털 파카에 갇힌 무수한 오리털들,이라고 시인은 쓴다 이따금 오리털이 삐져나오면 신은 삐져나온 오리털을 무신경하게 뽑아 버린다 사람들은 그것을 죽음이라고 말한다…(중략)…죽음 이후에는 천국도 지옥도 없으며 천사와 악마도 없고 단지 한 가닥의 오리털이 허공에서 미묘하게 흔들리다 바닥에 내려앉는다,고 시인은 썼다" ('오리털파카신')

"신은 부하들을 시켜, 세계에 입장하는 이들에게 수고비 대신 코스트코 빵을 나눠 주었다 사람들이 태어났다 빵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어리둥절했다 우리는 모여 골똘히 생각했다 왜 우리들은 빵을 받지 못한 걸까?" ('입장모독' 중)

제목이 피타고라스의 정리에 나오는 직각삼각형과 그 밑변 끝에 찍힌 작은 점으로 이뤄진 시도 재미있다.

"삼각형 외부의 점은 처치 곤란했다//그것은 태어남 자체가 부주의했으므로//…(중략)…//점이 아파한다//삼각형 바깥에 의외의 점을 찍는다//무고한 점의 바보 같은 질문//누가 나를 찍어 놓고 자세히 관찰하고 있다는//놀랍고 음산한 점이 어떤 공간을 의식하고 있는"

시집의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도서관과 책의 이미지가 이 시집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도서관은 시인의 일상과 함께하는 무채색의 단조로운 공간으로 무심하게 그려지지만, 시인의 마음이 태어난 고향 같은 곳이어서 애틋함이 남는다. 표제작 '책기둥'은 맨 마지막에 실려 있는데, 시인이 짧은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다시 자신의 방 중심에 있는 책기둥을 쓰다듬는 느낌이다.

"난쟁이들은 맨 아래 깔린 책을 얻기 위해 기둥을 무너뜨린다. 책은 쌓여 기둥이 된다. 기운다. 치우친다. 쏟아진다. 다시 쌓인다. 맨 아래 깔린 책을 읽으면 그 위에 쌓인 모든 책을 다 읽은 거나 다름없다고, 그 한 권의 책은 그 위에 쌓인 책들을 집약한다,는 나의 생각이 안일하다고 에드몽은 꾸짖는다. 햇살이, 몇 가닥 되지 않는 얇고 구불구불한 난쟁이들의 머리칼에서 반짝인다. 빛이 그들의 오래된 생각을 때린다. 난쟁이들은 이제 지친 게 아니겠냐고 생각하는 내가 아직 책을 덜 읽었다,고 에드몽이 말한다." ('책기둥' 중)

이 시인의 김수영문학상 수상 소감도 시 만큼이나 재미있다.

"사람들은 시가 쓸모없다고 말하는데 그 말은 기분 좋은 말입니다. 저는 평소에 제가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생각을 자주 하는데, 내가 아무리 쓸데없어 봤자 시만큼 쓸모없겠냐 싶고 그런 생각을 하면 저절로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입니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박상수는 "엄숙과 진지함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그것을 사소하고 명랑한 이야기로 돌파하려는 젊은 시인의 탄생을 보는 일이 이처럼 즐겁다"고 평했다.

192쪽. 9천 원.

min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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