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TF 보고서로 해소된 의문과 남은 쟁점은
비공개 합의 존재 확인…'2015년내 합의' 집착 배경·美입김 미지수
박근혜 前대통령·이병기 前실장 조사 못한 것은 '한계'
(서울=연합뉴스) 조준형 기자 = 한일위안부 합의 검토 TF의 27일 보고서 발표로 '불가역적 해결' 표현의 삽입 경위, '이면합의' 존재, 양국 정상 측근 간의 물밑 협상 경위 등을 둘러싼 의문점이 어느 정도 해소됐다.
그러나 2015년 한국 정부가 합의를 서두른 배경, 미국의 역할 등과 관련해 TF는 분명한 답을 내 놓지 않았다. 합의의 최종결정권자인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병기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구속된 가운데, 이들에 대한 청취 조사가 이뤄지지 못했기에 진실 규명 과정에 한계가 있었다는 지적도 나올 수 있어 보인다.
다음은 이번 TF 보고서를 통해 해소된 의문과 남은 의문점을 정리한 것이다.
▲'이면합의' 존재 = 한일 양국 정부가 합의후 한 입으로 부인해온 '이면합의' 존재에 대해 TF는 보고서에서 "위안부 합의에는 외교장관 공동기자회견 발표 내용 이외에 비공개 부분이 있었다"며 사실상 그 존재를 인정했다.
한국 측이 위안부 관련 단체가 불만을 품을 경우 설득 노력을 한다는 내용, 제3국에 소녀상이나 기림비가 설치되는데 한국 정부 차원에서 지원하지 않겠다는 내용,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성노예'라는 표현에 대해 '한국 정부의 공식 명칭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뿐임을 재확인한다'고 밝힌 점 등이 비공개 부분이었다.
▲'불가역적 해결' 문구 왜 포함됐나 = 위안부 합의에서 한국 측에 가장 뼈아픈 표현을 꼽자면 '불가역적 해결'일 것이라는게 많은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국 정부가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어떤 입장을 표명하기라도 하면 일본은 그 문구를 거론하며 '합의 준수'를 요구했고, 한국에서는 '적반하장식 태도'라는 대일 비난 목소리가 들끓었다.
TF는 일본이 사죄를 뒤집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한국이 먼저 '불가역적'이라는 표현을 꺼냈으나 '해결'의 불가역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맥락이 둔갑한 채 합의에 들어갔다고 지적했다.
TF는 정식 합의 약 8개월 전 이병기-야치 사이에 '잠정 합의'가 나온 직후 외교부는 '불가역'이라는 표현을 빼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청와대가 수용하지 않았다고 소개했다.
합의후 한국 측은 '불가역적 사죄'를 담보받은 것이라는 나름의 의미를 부여했지만 결국 '자충수'였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청와대 주연·외교부 조연' 합의 = 합의는 표면상 한국 외교부와 일본 외무성의 국장급 협상을 거쳐 양국 외교장관(윤병세-기시다 후미오)의 대 언론 발표 형태로 공표됐지만 물밑에서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야치 쇼타로(谷內正太郞) 국가안보국장 간의 협상이 있었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져 있었다. 이 대목에 대해 TF는 8차에 걸쳐 회동한 이병기-야치 라인의 역할을 '주연', 양국 외교부 국장들의 역할은 '조연'에 비유했다. 그러면서 "위안부 협상과 관련한 정책의 결정 권한은 지나치게 청와대에 집중돼 있었다"고 지적했다.
2014년 4월 시작된 국장급 협의의 교착 상태를 풀기위해 그해 말 한국 정부가 고위급 협의를 병행하기로 했고, 일본 측이 야치 국장을 내세우자 한국 측은 이병기 실장이 나섰다고 TF는 밝혔다. TF는 이 때가 협상의 중심이 고위급 비공개 협의로 옮겨간 '전환점'이었다고 진단했다. 또 TF는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지시로 이병기 실장이 대표로 나섰다고 적었다.
다만 비공개 고위급 협의의 당사자인 이병기 전 실장이 구속되면서 TF와의 접촉이 무산됐기에 이 전 실장은 TF의 이런 결론에 대해 '반론권'을 행사하지 못했다는 점은 '한계'로 지적된다.
▲왜 합의 서둘렀나…박근혜 전 대통령 역할은= 2015년 11월 2일 한일정상회담 후에도 위안부 협상은 한동안 막판 교착 상황을 벗어나지 못하다 연말 전격적으로 타결된 배경이 줄곧 궁금증을 자아냈는데 이번에도 말끔히 해소되지 못했따.
TF는 "박근혜 대통령은 연내 타결에 강한 의욕을 보였다"며 일단 박 대통령의 의중이 강하게 반영됐다고만 소개했다. 또 박 대통령이 미국을 통해 일본을 설득한다는 전략 하에 몇차례의 한미 정상회담때 일본 지도층의 역사관으로 인해 한일관계 개선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을 되풀이해 강조했지만 오히려 미국 안에 '역사 피로' 현상을 불러왔다고 지적하고 "국제 환경이 바뀌면서 (박 전 대통령이) '2015년 내 협상 종결' 방침으로 선회하며 정책 혼선을 불러 왔다"고 진단했다.
결국 '위안부 문제 진전 없는 정상회담 불가'를 강조하던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5년내 위안부 합의 종결' 방침으로 갑자기 선회했고, 막판 이병기-야치 간의 2015년 12월23일 제8차 고위급 협의에서 합의가 최종 타결됐다는게 TF의 결론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왜 '2015년내 합의 도출'에 집착했는지에 대해 이번 보고서는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미국의 역할은 = 외교가에서는 전격적인 위안부 합의의 배경에 한미일 3국 공조의 복원을 원하는 미국의 강한 입김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거의 정설처럼 제기됐다. 이에 대해 TF는 "한일관계 악화는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지역전략에 부담으로 작용함으로써 미국이 양국 사이의 역사 문제에 관여하는 결과를 가져왔다"며 "이러한 외교 환경 아래서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와 협상을 통해 위안부 문제를 조속히 풀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을 맞았다"고 소개했다.
또 TF는 "미국은 한미일 협력 차원에서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했고, 2014년 3월25일 한미일 3국 정상회담이 (핵안보정상회의 계기에) 별도로 개최됐다"며 "이 과정에서 한·일 양국은 위안부 문제를 다루는 국장급 협의를 개시하기로 합의했다"며 미국의 한일관계 중재 노력이 있었음을 시사했다.
<YNAPHOTO path='PYH2017122719210001300_P2.jpg' id='PYH20171227192100013' title='위안부 합의 TF 활동 결과 발표하는 오태규 위원장' caption='(서울=연합뉴스) 최재구 기자 = 외교부 장관 직속 '한일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 검토 태스크포스(TF)' 오태규 위원장이 27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한·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 검토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jjaeck9@yna.co.kr' />
하지만 구체적으로 미국이 어떻게 관여했는지는 설명하지 않아 여전히 물음표로 남게됐다. 오태규 TF 위원장은 위안부 합의에 대한 미국의 개입과 관련 "살펴본 바에 의하면 한일이 잘 협력했으면 좋겠다는 수준 이상을 확인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피해자 의견수렴 있었나 없었나 = 합의후 피해자 지원단체들과 그 단체에 소속된 피해자들이 합의에 반대하면서 우리 정부가 피해자들의 동의를 구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제기됐지만 정부 당국자들은 당시 의견수렴 과정이 있었다고 항변했었다.
이번에 TF는 "(위안부 합의가 나온) 2015년 한해에만 모두 15차례 이상 (정부가) 피해자 및 관련 단체를 접촉했다"며 "외교부는 협상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피해자 쪽에 때때로 관련 내용을 설명했다"고 소개했다.
그러나 TF는 "최종적·불가역적 해결 확인, 국제사회 비난·비판 자제 등 한국 쪽이 취해야할 조치가 있다는 것에 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려주지 않았다"며 "돈(일본의 지원재단 출연금 10억 엔)의 액수에 관해서도 피해자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결과적으로 이들의 이해와 동의를 이끌어내는 데 실패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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