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양로원, 옛 추억 되살려 치매 치료
(서울=연합뉴스) 유영준 기자 = 알츠하이머성 치매에 걸린 노인들에게 옛 시절의 추억을 되살리는 환경을 조성해 줌으로써 기억력을 되살리는 치료 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포스트(WP)는 26일(현지시간) 옛 동독 지역의 한 양로원이 치매를 앓고 있는 90대 노인들에게 옛 동독 시절의 과거를 상기시켜주는 복고식 치료 방법으로 효과를 보고 있다고 소개했다.
단기간의 기억은 쉽게 잊어버리더라도 오랜 기간 쌓인 기억은 쉽게 잊히지 않으며 강력한 복원력을 갖고 있다는 논리이다.
옛 동독의 중심 도시였던 드레스덴의 알렉사 양로원은 양로원에 동독 시절을 상기시켜주는 정부 직영 소매가게 체인인 인터샵을 복원했다. 당시 익숙했던 주요 상품들과 함께 지금은 라디오에서 들을 수 없는 당시 유행했던 노래들도 들려준다.
치매 환자 노인들은 매일 일정 시간 이 '가게'에 들러 자신들이 즐겨 사용했던 물건들을 만지며 과거에 빠져든다.
알츠하이머성 치매는 기억력을 앗아가는 퇴행성 뇌 질환이다.
그러나 치매를 앓고 있는 양로원 노인들은 가게를 거치면서 잠시나마 치매를 벗어나 기억력을 회복한 듯한 인상을 보여준다. 그들에게는 지난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와 함께 서독에 흡수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린 옛 공산 동독의 모습이 조금 전의 기억보다 훨씬 생생하게 각인돼 있다.
양로원의 한 자원봉사자는 "치매를 앓는 사람들은 아직도 아주 양호한 장기간의 기억을 갖고 있다"면서 "그들은 친지나 가족들을 잘 기억하지 못하지만 수십 년 전의 특정한 세세한 것들은 아주 잘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양로원들도 체류자들에게 일상생활을 기억하도록 도와주고 있지만 알렉사 양로원은 체류자들의 기억력 회복을 위해 역사를 완전히 복원해 놓은 상태이다.
치매 환자들은 통상 자신의 삶을 구성할 수가 없고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상태이다. 기억력을 살리는 통상적인 방법 가운데 하나는 그들에게 머리빗과 같은 옛 생활 도구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은 환자가 자기 일에 열심일 때만 효과를 발휘한다.
양로원장인 귄터 볼프람(49)이 2년 전 실내 장식용으로 1960년대 동독의 모터 스쿠터를 사들이면서 상당한 효과가 나타났다. 환자들이 스쿠터의 면면을 기억해 냈고 그들이 스쿠터를 타고 친구와 놀러 갔던 기억들을 양로원 직원들에 얘기한 것이다.
볼프람 원장은 이에 낡은 라디오와 여권, 헤어드라이어, 아이스크림 광고판 등 1960년대 동독 지역에서 사용되던 물건들을 사들여 전용 '기억실'을 차렸다. 당시 소규모 슈퍼마켓과 일반 가정의 거실, 안락의자 등도 함께 복원됐다.
인터샵 가게에는 간호사들이 점원 역할을 한다.
머지않아 볼프람 원장과 양로원 간호사들은 기억실을 출입한 환자들 사이에 일어나는 변화를 감지했다. 환자들은 더 많이 마시고 먹기 시작했으며 필요할 때 혼자서 화장실에 가기도 했다.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환자들의 능력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젊은 간호사들은 실험이 성공을 거두도록 동독에 대해 더 많은 것을 공부해야 했다. 동독 시절에 대한 경험이나 기억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실험이 성과를 나타내면서 볼프람 원장과 간호사들은 시대를 1970년대로 확장했다. 70년대를 상기시켜주는 두 번째 기억실을 마련해 당시 물품들을 비치했다. 방 입구에는 동독 체제의 실패와 붕괴를 상징하는 베를린 장벽 그림이 방문객들을 맞고 있다.
분단 시절 동독에서 태어난 많은 독일인은 아직도 상당수가 동독 시절에 대해 긍정적인 기억들을 하고 있다. 남녀 노동자가 동등한 대우와 책임, 급료를 받고 실업률도 낮았던 시기이다. 제한된 자유 속에서 어려움도 있었지만 즐거운 기억들이 많았던 시기이다.
양로원 측은 수년 내로 기억 시대를 1980년대로 확장할 계획이다. 베를린 장벽이 붕괴하고 할리우드 영화 관람과 해외여행이 허용되는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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