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 '성탄절과의 전쟁'…대형 크리스마스 트리 쓰러뜨려(종합)

입력 2017-12-25 22:13
중 '성탄절과의 전쟁'…대형 크리스마스 트리 쓰러뜨려(종합)

초등학교서 "성탄절 배척" 가르치고, '성탄절 보이콧' 가두행진도

기독교도 많은 원저우에선 성탄 축하 행진…환구시보 "과대 정치적 해석"



(홍콩=연합뉴스) 안승섭 특파원 = 중국 당국이 '성탄절 보이콧' 운동에 나서면서 대형 크리스마스 트리가 사람들에 의해 쓰러지는 등 성탄절 분위기가 최악으로 가라앉았다고 홍콩 빈과일보 등이 25일 전했다.

빈과일보와 동방일보에 따르면 지난해까지만 해도 중국 관영 매체인 신화통신과 중국중앙(CC)TV가 성탄절 전야 길거리의 넘쳐나는 인파와 흥겨운 분위기를 전하는 등 성탄절 배척 분위기가 그리 강하지 않았다.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廣州) 등의 일류 호텔은 예약이 꽉 차서 식당에 자리를 잡기 힘들 정도로 성탄 경기가 한껏 고조됐다.

하지만 지난 10월 제19차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에서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중국 문명의 위대한 부활을 주창한 후 분위기는 확 달라졌다.

신화통신, CCTV 등 관영 매체에서 성탄절 관련 보도는 자취를 감췄고, 일류 호텔의 식당 예약률은 지난해보다 뚝 떨어졌다.

중국 공산당은 주요 기관, 대학, 공산주의청년단 등에 성탄절 활동에 참여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다. 일부 지역에서는 산타클로스 복장을 하거나, 가게 앞에 크리스마스 트리 및 장식을 설치하는 것도 금지됐다.

상하이의 한 방송국은 프로그램이나 광고 등에서 성탄절 장식 등을 노출하지 말라는 지시를 받았다.

충칭 도심의 랜드마크인 '해방비' 광장에는 전날 밤 수천명의 경찰들이 대거 진을 친 뒤 성탄절 경축 행사를 열지 못하게 하고 행인들이 접근하지도 못하게 했다. 해방비 광장에서는 그간 매년 성탄 전야 행사가 벌어지던 곳이었다.

인터넷에서는 야외에 설치된 한 대형 크리스마스 트리에 사람들이 몰려와 이를 쓰러뜨리는 동영상이 확산하고 있다.

다른 동영상에서는 한 초등학교에서 어린 학생들이 교사의 지시에 따라 큰 소리로 "서양의 명절을 거부한다. 우리 문명을 계승해 중국 명절을 지내자"는 구호를 외치는 모습이 포착됐다.

산둥(山東)성의 한 기업은 사람들을 조직해 가두 행진을 벌이면서 "수입품을 배척하고 국산품을 쓰자. 성탄절을 지내지 말고, 우리 중화를 사랑하자. 마오쩌둥 주석 만세" 등의 구호를 외쳤다.





명보에 따르면 광저우의 한 교회에서는 크리스마스 전날 사람들이 몰려들자 경찰이 나서 도로를 막고 사람들에게 돌아갈 것을 권유하기도 했다.

베이징의 한 기관은 '세계를 포용한다'는 표어를 내걸고 산타 복장을 한 수백 명의 사람이 참여한 성탄절 축하 달리기 대회를 조직했다. 하지만 상당수 사람이 중도에 사라졌고, 대회 후 길가 쓰레기통에는 산타 옷이 가득 차 있는 모습이었다.

당국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예루살렘'으로 불릴 정도로 개신교도가 많은 저장(浙江)성 원저우(溫州)시에서는 성탄절 축하 가두행진이 벌어졌다.

'메리 크리스마스' 팻말을 든 이들은 북을 두드리고 찬송가를 부르며 행진하면서, 길가의 사람들에게 사탕을 나눠주고 성탄절 축하 활동에 함께할 것을 권유했다.

원저우시는 전체 인구의 10%인 90만 명가량이 기독교도일 정도로 기독교 세가 강하다. 시 주석 집권 후 중국 정부는 기독교에 대한 탄압을 강화해 2014년부터 이 지역의 2천여 개 교회에 있는 십자가를 모두 철거했다.

중국 당국의 성탄절 보이콧 운동에 상당수 중국 네티즌들은 냉소를 금치 못했다.

한 네티즌은 "마르크스주의, 공산주의, 서기(西紀), 신정(新正·양력 1월 1일) 등이 모두 서양에서 들어온 것인데, 이 모든 것을 금지하란 말이냐"고 조소를 보냈다.

많은 네티즌은 시 주석이 2010년 핀란드를 방문했을 때 산타클로스 분장을 한 노인과 함께 찍은 사진을 유포하면서 공산당의 크리스마스 탄압을 조롱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중국 관영 환구시보는 이날 사평을 통해 중국 당국이 성탄절 보이콧에 나섰다는 주장은 과대 해석한 것이라며 외국 매체들이 이를 빌어 중국이 정치적 고려에 따라 외래문화를 배격한다는 이미지를 심으려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ssah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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