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 '성탄절과의 전쟁'…대형 크리스마스 트리 쓰러뜨려

입력 2017-12-25 13:27
중 '성탄절과의 전쟁'…대형 크리스마스 트리 쓰러뜨려

초등학교서 "성탄절 배척" 가르치고, '성탄절 보이콧' 가두행진도

기독교도 많은 원저우에서는 성탄 축하 행진



(홍콩=연합뉴스) 안승섭 특파원 = 중국 당국이 '성탄절 보이콧' 운동에 나서면서 대형 크리스마스 트리가 사람들에 의해 쓰러지는 등 성탄절 분위기가 최악으로 가라앉았다고 홍콩 빈과일보 등이 25일 전했다.

빈과일보와 동방일보에 따르면 지난해까지만 해도 중국 관영 매체인 신화통신과 중국중앙(CC)TV가 성탄절 전야 길거리의 넘쳐나는 인파와 흥겨운 분위기를 전하는 등 성탄절 배척 분위기가 그리 강하지 않았다.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廣州) 등의 일류 호텔은 예약이 꽉 차서 식당에 자리를 잡기 힘들 정도로 성탄 경기가 한껏 고조됐다.

하지만 지난 10월 제19차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에서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중국 문명의 위대한 부활을 주창한 후 분위기는 확 달라졌다.

신화통신, CCTV 등 관영 매체에서 성탄절 관련 보도는 자취를 감췄고, 일류 호텔의 식당 예약률은 지난해보다 뚝 떨어졌다.

중국 공산당은 주요 기관, 대학, 공산주의청년단 등에 성탄절 활동에 참여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다. 일부 지역에서는 산타클로스 복장을 하거나, 가게 앞에 크리스마스 트리 및 장식을 설치하는 것도 금지됐다.

상하이의 한 방송국은 프로그램이나 광고 등에서 성탄절 장식 등을 노출하지 말라는 지시를 받았다.

인터넷에서는 야외에 설치된 한 대형 크리스마스 트리에 사람들이 몰려와 이를 쓰러뜨리는 동영상이 확산하고 있다.

다른 동영상에서는 한 초등학교에서 어린 학생들이 교사의 지시에 따라 큰 소리로 "서양의 명절을 거부한다. 우리 문명을 계승해 중국 명절을 지내자"는 구호를 외치는 모습이 포착됐다.

산둥(山東)성의 한 기업은 사람들을 조직해 가두 행진을 벌이면서 "수입품을 배척하고 국산품을 쓰자. 성탄절을 지내지 말고, 우리 중화를 사랑하자. 마오쩌둥 주석 만세" 등의 구호를 외쳤다.





명보에 따르면 광저우의 한 교회에서는 크리스마스 전날 사람들이 몰려들자 경찰이 나서 도로를 막고 사람들에게 돌아갈 것을 권유하기도 했다.

베이징의 한 기관은 '세계를 포용한다'는 표어를 내걸고 산타 복장을 한 수백 명의 사람이 참여한 성탄절 축하 달리기 대회를 조직했다. 하지만 상당수 사람이 중도에 사라졌고, 대회 후 길가 쓰레기통에는 산타 옷이 가득 차 있는 모습이었다.

당국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예루살렘'으로 불릴 정도로 개신교도가 많은 저장(浙江)성 원저우(溫州)시에서는 성탄절 축하 가두행진이 벌어졌다.

'메리 크리스마스' 팻말을 든 이들은 북을 두드리고 찬송가를 부르며 행진하면서, 길가의 사람들에게 사탕을 나눠주고 성탄절 축하 활동에 함께할 것을 권유했다.

원저우시는 전체 인구의 10%인 90만 명가량이 기독교도일 정도로 기독교 세가 강하다. 시 주석 집권 후 중국 정부는 기독교에 대한 탄압을 강화해 2014년부터 이 지역의 2천여 개 교회에 있는 십자가를 모두 철거했다.

중국 당국의 성탄절 보이콧 운동에 상당수 중국 네티즌들은 냉소를 금치 못했다.

한 네티즌은 "마르크스주의, 공산주의, 서기(西紀), 신정(新正·양력 1월 1일) 등이 모두 서양에서 들어온 것인데, 이 모든 것을 금지하란 말이냐"고 조소를 보냈다.

많은 네티즌은 시 주석이 2010년 핀란드를 방문했을 때 산타클로스 분장을 한 노인과 함께 찍은 사진을 유포하면서 공산당의 크리스마스 탄압을 조롱하기도 했다.





ssah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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