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케이트 신어야 하나" 눈 오는 게 두려운 의정부 주민

입력 2017-12-25 08:01
"스케이트 신어야 하나" 눈 오는 게 두려운 의정부 주민

이달 9명 눈길에 넘어져 병원 신세…제설 안 돼 불만 '폭발'

(의정부=연합뉴스) 최재훈 기자 = "길인지 빙판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요. 차라리 신발 말고 스케이트를 신고 다니라고 하세요. 누구 하나 머리 깨져야 제설작업 해주나요?"

지난 18일 폭설이 내린 뒤 의정부시 홈페이지에 올라온 글들이다.

그리고 실제 누군가의 머리가 깨졌다.

의정부시 제설행정에 대한 불만은 한두 해 이어지는 것이 아니다. 특히 이달 들어 눈이 빈번하게 내리며 불만이 폭발하는 분위기다.

지난 21일 오후 녹양동에서 80대 할머니가 눈길을 걷다 미끄러졌다.

길에서 두 번이나 넘어진 할머니는 얼굴 일부가 찢어지는 상처를 입고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옮겨졌다.

사고 전날인 20일 의정부에는 10cm가 넘는 눈이 내렸다.

할머니가 병원으로 실려 간 날 오전 호원동에서는 중학교에 다니는 남학생이 눈길에서 미끄러져 발목을 접질려 구급차 신세를 져야 했다.

25일 의정부소방서에 따르면 지난 1일부터 22일까지 의정부 지역에서 눈길이나 눈이 얼어붙어 생긴 빙판길에 낙상사고를 당해 구급차를 부른 시민만 9명인 것으로 파악됐다.

눈이 내려 쌓이는 중이라면 조심하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눈이 그친 뒤 수일이 지나도록 제설작업을 하지 않아 빙판이 된 길을 걸어야 하는 주민들은 "해도 너무 한다"는 반응이다.

많은 눈이 내린 지난 10일과 21일 전후로 시내 곳곳의 제설 상태를 확인해 봤다.

일정 규모 이상의 큰 도로는 대체로 제설이 된 상태였다. 그러나 골목길을 비롯한 이면도로와 시민이 다니는 인도는 일부 점포 앞을 제외하고는 제설작업이 이뤄지지 않은 곳이 대부분이었다.



지난 16일 오후 의정부역 동부광장을 가봤다. 1주일 전에 내린 눈이 그대로 방치돼 얼음판을 방불케 했다. 주민들이 많이 다니는 길임에도 제설 흔적은 없다.

유동인구가 많은 곳이 이 모양이니 일반 주택가 골목길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서울에서 의정부로 출근하는 배모(33)씨는 "차도에 쌓인 눈은 치우는 것 같은데 인도는 그냥 방치되는 것 같아 눈만 오면 조심스럽게 걷는다"며 "서울을 비롯한 다른 지역과 비교하면 상태가 좀 심한 것 같다"고 말했다.

10cm가 넘는 눈이 내렸던 21일 이후의 모습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22일 오전 의정부 동오역 근처는 인도와 차도 구분 없이 제설이 안 된 모습이었다. 눈이 쌓인 미끄러운 길을 걸으며 등교하는 학생들의 모습이 위태로워 보였다.



의정부에 사는 이모(50)씨는 "한마디로 개판이라고 생각한다"며 "눈이 올 때마다 길이 다 얼어붙어 노모가 혹시 다칠까 외출도 말릴 정도"라고 말했다.

도로의 유지보수와 관리 책임은 해당 시·군에 있다. 제설도 일종의 유지보수 작업이므로 지자체가 담당한다.

의정부시는 눈이 많이 왔을 때 큰 도로는 시청에서, 작은 도로와 골목길은 동이나 주민센터 단위에서 직원들이 제설을 담당한다.

시 조례에 따르면 점포나 주택 등 건물 앞에 쌓인 눈은 건물 관리자가 치워야 한다. 눈 때문에 사고가 나면 건물 관리자가 일부 민사상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조례는 강제성이 없다.

의정부시민 김모(30)씨는 "점포나 집 앞은 본인들이 불편해서라도 눈을 치우는 편이나 사람이 많이 다니는 인도는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아 제설 상태가 가장 심각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시 관계자는 "인도나 이면도로의 경우 버스 정류장처럼 유동인구가 많거나 민원이 발생하는 곳에 우선으로 나가 눈을 치우는데, 인력 문제 때문에 한계가 있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제설은 지자체가 얼마나 관심을 두고 매달리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똑같이 눈이 내렸는데 어느 지자체는 신속히 잘 치우고 어느 시·군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눈이 많이 오는 강원 지역 지자체들의 경우 폭설 예보가 내려지면 주요 도로를 세분화해 장비와 인력을 배치하고, 적설량에 따라 비상근무 인력과 장비 투입 계획을 세우는 등 지자체가 제설에 관심을 기울이며 총력을 다하고 있다.

시민 윤모(44·여)씨는 "공무원들도 힘들겠지만, 멀쩡한 도로 보도블록 교체만 하지 말고 시에서 제설에 관심을 가지고 힘써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jhch793@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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