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는 노래…김정환 장시집 '소리 책력'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김정환(63) 시인이 새 시집 '소리 책력冊歷'(민음사)을 펴냈다.
그동안 시대와 역사를 통찰하는 긴 호흡의 시들을 많이 보여준 시인은 이번에 그 끝판이라 할 수 있는 시도를 했다. 한 권의 시집으로 묶일 분량의 길고 긴 시를 쓴 것이다. '소리 책력冊歷'이라는 한 편의 장시(長詩)가 이 시집 전체를 차지한다.
문학평론가 박수연은 이 장시를 "시로 쓴 예술철학"이라고 해설했다. 쉽게 가시화하거나 언어화할 수 없는 시간의 흐름과 순환을 '책력'이라는 구성에 '소리'라는 형식으로 담아냈다는 것이다.
모든 시어는 서로를 호명하고 반복되며 변형된다. 시인은 의식의 흐름을 연상시키는 언어의 연쇄 속에 시간과 세월을 포착하고, 죽음과 슬픔을 노래한다.
"사물이 사물 묘사다./단 하나의 사물이 단 하나의 사물 묘사다./어리굴젓도 목재 문도 죽은 생명이/명사로 다시 태어나는 언어 기쁨으로 몸을 떤다." (52쪽)
"인간의 연민과 죽음이 다시 의인화하여 인간을/인간적인 슬픔으로 보챈다는 거, 우리가 그것을/인간의 불행이라고 부를 자격이 우리에게 없다./우리는 슬픔으로 나름 고귀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가장 슬픈 것이 먹이사슬이건만/슬픔의 우리 속에 여전히, 아니 갈수록 참칭하는/인간밖에 없다." (91쪽)
100여 쪽에 달하는 이 시는 마지막에 "품을 수 있는 것이 슬픔이다"라는 문장으로 끝을 맺는다.
시간의 흐름 속에 남는 것은 슬픔이고, 그것을 품고 가는 것이 인간의 숙명임을 노래한 것이다.
1980년 '창작과비평'을 통해 등단한 시인은 '지울 수 없는 노래', '황색예수전', '회복기', '좋은 꽃', '해방서시', '우리, 노동자', '레닌의 노래', '드러남과 드러냄', '거룩한 줄넘기', '내 몸에 내려앉은 지명' 등 20여 권의 시집을 냈다. 백석문학상, 아름다운작가상, 만해문학상을 받았다.
156쪽. 9천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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