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탕서 불나면 어떡하지…" 제천 화재에 시민 불안감

입력 2017-12-22 15:51
"목욕탕서 불나면 어떡하지…" 제천 화재에 시민 불안감

화재 취약 원룸 거주자도 불안…전문가 "건물 용도보다 위험도 따라 법 적용해야"



(서울=연합뉴스) 김기훈 황재하 김예나 기자 = 충북 제천의 스포츠센터에서 난 큰불로 무려 29명이나 목숨을 잃는 참사가 빚어지자 평소 사우나와 찜질방 등을 자주 찾는 시민들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번 화재로 인한 사망자들 중 20명이 2층 여성 사우나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스포츠센터 건물 1층에서 불이 시작되고 이로 인해 유독가스가 바로 위층의 사우나 입구로 밀려들어 이용객들의 대피가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창문도 없는 밀폐된 공간에서 목욕하던 여성들은 불이 난 사실을 뒤늦게 알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더구나 해당 목욕탕은 장소의 특성상 입구가 좁은데다 하나밖에 없어 화재 시 탈출에도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22일 서울 영등포구의 한 사우나 겸 찜질방에서 일하는 60대 여성은 "어제 제천 화재 뉴스를 보니 '목욕탕에서 일하던 나는 언제든 죽을 수 있겠구나' 싶었다"며 "소방 당국에서 평소 정기적으로 점검을 나오긴 하는데 제대로 하는지, 비상벨이 위험 상황에 과연 제대로 작동할지 불안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번 사고를 계기로 제대로 된 안전 점검이 이뤄졌으며 좋겠다"고 말했다.

이 사우나 앞에서 만난 주민 윤모(65)씨는 "몇 년 전 의정부에서 큰불이 나 인명 피해가 컸는데도 또 비슷한 참사가 되풀이됐다"며 "꾸준히 안전 대책을 세우고 밀고 나가야 하는데 임시방편 대책뿐이다 보니 이런 불상사가 났다"고 안타까워했다.

또 다른 목욕탕에서 만난 업주는 "목욕탕이든 찜질방이든 일단 규모를 크게 짓다 보면 자재 비용을 아낄 수밖에 없다"며 "많은 이들이 이용하는 대규모 시설은 특히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 연합뉴스 취재진이 22일 점검한 사우나 등은 외부로 이어지는 통로가 하나뿐이거나 지하에 위치해 밀폐된 구조로 이뤄진 곳이 많았다. 또 화재 등 비상상황 시 대피 경로를 표시한 안내문이 보이지 않는 곳도 있었다.



화재가 발생할 경우 대규모 인명 피해로 이어질 수 있는 원룸 등 다세대주택 거주자들도 불안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서울 동작구 사당동의 한 원룸에 거주하는 전모(29)씨는 "현재 거주하는 집은 반지하부터 2층까지 1개 층에 방이 6개씩 다닥다닥 붙어 있다"며 "옥외 계단이 없고 통로가 하나뿐이라 불이 나면 그쪽으로 나올 수밖에 없는데 복도가 너무 좁다. 한 명이 겨우 지날 수 있을 크기"라고 우려했다.

이어 "주거지역의 도로가 좁아 소방차 진입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씨는 덧붙였다.

영등포구 당산동의 한 원룸에 거주하는 직장인 이모(31·여)씨는 "제천의 스포츠센터처럼 필로티 구조로 된 건물에 거주하고 있다"며 "필로티 구조가 화재에 취약하다 보니 한번 불이 나면 큰불로 이어질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 건물 1층은 주차장, 2층은 사무실로 사용되고, 3층부터 8층까지 5개 층에는 총 48세대가 거주하고 있다고 이씨는 전했다.

한편 소방전문가들은 제대로 된 건축 설계가 화재 관리의 첫걸음이라고 입을 모았다.

숭실사이버대학교 소방방재학과 박재성 교수는 "목욕탕이나 헬스클럽 등은 다중이 이용하는 시설인데도 면적이 크지 않으면 근린생활시설로 분류돼 완화된 소방법을 적용받는다"며 "규모를 떠나 화재 발생 시 위험도를 기준으로 삼아 강화된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같은 과의 이창우 교수는 "한국의 경우 하나의 건물을 지을 때 소방 시설과 관련한 비용이 전체 건축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8%밖에 안 된다"며 "건축 도면을 그리는 단계에서부터 소방과 안전을 최우선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kih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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