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부끄러움은 어디서 왔을까…소설 속 100년史
문학평론가 서영채, '죄의식과 부끄러움' 출간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문학평론가 서영채(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 교수)가 '죄의식과 부끄러움- 현대소설 백년, 한국인의 마음을 본다'(나무나무출판사)를 펴냈다.
이 책의 성격은 독특하다. 한국 소설을 분석하고 있지만, 평론서라기보다는 한국의 근현대 100년 역사 속에서 사람들의 마음이 소설 속에 어떻게 드러났는지를 살펴보는 인문서에 가깝다.
저자는 한국 최초 근대 장편소설로 일컬어지는 이광수의 '무정'이 발표된 지 100년 되는 시점인 2017년에 대통령 탄핵이라는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난 것이 간단한 우연이 아니라고 본다.
책머리에 그는 "둘 모두 신민지 근대성으로부터의 탈출을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를 내장"한다며 "한국에서 백 년 넘게 끌어온 식민지 근대성의 종말, 한국에서 이루어진 근대적 주체 형성의 역사가 마침내 도달한 정점을 뜻한다는 것이다. 주권과 주체의 일치가 드디어 이루어지는 순간에 이르렀다"고 썼다.
이어 "주권 없는 주체들과 더불어 지난 백년을 통과해오면서 한국소설들은 그들의 일그러진 마음을 기록해왔다", "한국소설 백 년은, 그 쉽지 않은 단련 과정을 거치면서 스스로를 한 공동체의 시민 주체로 받아들이게 된 마음의 역사"라며 "이 책은 그 한 자락을 들여다본 시선의 기록"이라고 소개했다.
저자는 지난 백 년 동안 한국인들이 함께 통과해야 했던 네 개의 관문을 '국권 상실, 한국전쟁, 경제적 빈곤, 정치적 미숙성'이라고 정리한다. "20세기 한국인이라는 하나의 인격체를 상정한다면 그는 이 네 개의 관문을 뚫고 나가기 위해 때로는 피를 흘리고 고통을 받으며, 적지 않은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고 분석한다.
그런 한국인의 마음은 죄의식과 부끄러움, 분노와 원한 같은 정념들로 요약된다. 특히 죄의식과 부끄러움은 동물을 사람으로 만드는 보편적인 '사람됨'의 원천이기 때문에 시민이라는 주체의 형성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해서는 안 될 짓을 했을 때 느끼는 죄의식, 해야 할 것을 제대로 하지 못했을 때 느끼는 부끄러움은 결국 책임의 문제로 이어진다.
식민지에서 태어나 주권 없는 존재로 살아야 했던 이광수는 소설 '유정'에서 주인공이 짓지도 않은 죄에 책임을 지겠다며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귀결을 그렸으며, 자기 땅에서 엄청난 규모의 전쟁이 벌어져 피를 흘렸는데도 그 전쟁의 주체일 수 없었던 최인훈은 '광장'의 주인공이 남북 모두를 거부한 채 자살을 택하는 '과잉윤리'의 결말을 그렸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뒤이어 군사 독재 시절에는 폭압적 권력 구조에 제대로 저항하지 못함으로써 생겨나는 마음의 짐이 '책임윤리'로 소설에 나타난다. 1980년 광주항쟁의 현장에서 살아남은 작가 임철우의 '백년여관'과 30년이 지난 뒤 나온 김경욱의 '야구란 무엇인가', 이해경의 '사슴 사냥꾼의 당겨지지 않은 방아쇠', 한강의 '소년이 온다' 같은 소설들이다.
저자는 이 축적된 죄의식과 부끄러움이 결국 분노로 표출된다고 설명한다.
이 책을 쓰는 와중에 촛불집회 행렬에 있었다는 그는 "슬픔과 분노가 뒤섞인 그 공간에서 나는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을 때 이미 박근혜의 탄핵은 이뤄졌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2017년 3월 10일의 탄핵 판결은 그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절차였을 뿐"이라고 단언했다.
"광장을 메운 수많은 촛불 속에서 외치고 응시하는 사람 중 하나가 되어, 스스로가 시민 주체로 거듭나고 있음을 깨달은 것이 나 혼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촛불집회는 애도와 결별의 공간이자 동시에, 새로운 탄생의 공간이기도 했다"고 강조했다.
476쪽. 3만2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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