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부정" vs "사실 재현"…울산 학성공원 왜장 동상 논란
정유재란 전투 재현하고자 중구가 추진…학계·정치권 반발
(울산=연합뉴스) 허광무 기자 = 울산시 중구가 울산왜성의 흔적이 남은 학성공원에 정유재란 당시 조선군에 맞서 싸운 왜장의 동상 건립을 추진해 논란이 일고 있다.
중구는 울산왜성 등 역사문화 유산을 간직한 학성공원 일원의 도시경관을 정비해 새로운 지역 브랜드로 만드는 '학성르네상스 도시경관 조성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총 10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정유재란을 주제로 한 조형물과 성벽 등을 조성하고, 나무 등을 심어 일대 경관을 개선할 예정이다.
중구는 이 사업의 하나로 공원 입구에 조선의 권율 장군, 명나라의 양호 장군, 왜장인 가토 기요마사 등 3기의 동상을 이달 말까지 설치할 예정이다.
권율과 양호 장군의 동산은 높이 2.7m의 기마상으로, 가토는 1.2m의 좌상으로 각각 설치된다.
중구는 당시 이들 장군이 벌인 '도산성 전투'를 방문객들에게 생생하게 소개하고자 3명 장군의 동상을 세운다고 설명했다.
학성공원에 흔적이 남아 있는 울산왜성은 신라의 계변성으로 불리던 성을 1597년(선조 30년) 정유재란 때 왜장 가토 기요마사가 새로 쌓았다. 조선군에서는 섬처럼 생긴 형상이라 뜻에서 도산성이라 불렀다.
정유재란 당시 울산왜성에서는 조선·명나라 연합군과 왜군 사이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연합군은 성을 완전히 포위하고 보급로를 끊어 왜군을 고사시키는 작전을 펼쳤다.
왜군에게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동안 치른 육전(陸戰·육지에서 벌이는 전투) 가운데 가장 고전한 전투로 기록된다.
그러나 이제는 시민의 휴식공간이 된 학성공원에 왜장의 동상을 세우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한삼건 울산대 건축학부 교수는 "우리 땅을 유린한 왜장의 동상을 세우는 것은 우리 역사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성토했다.
천병태(민중당) 중구의원도 이날 중구의회 본회에서 구정질문을 통해 "가토는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오른팔에 해당하는 인물로, 침략의 선봉장 역할을 했다"면서 "일본인들이 임진왜란을 대표하는 장수로 생각한 가토의 동상을 우리가 만들어 세우는 것은 스스로 역사의식을 흐리게 만드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민중당 울산시당은 전날 "역사의 현장에 왜장의 동상을 세우는 것은 시민의 정서로 용납될 수 없고, 미래 세대의 역사관 확립에도 도움이 될 수 없다"는 내용의 논평을 냈다.
이에 대해 중구는 학성공원이 정유재란 최대 격전지였고 도산성 전투에서 왜군의 기세를 꺾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알리기 위한 것일 뿐, 왜장을 우상화하려는 의도가 아니라고 반박했다.
중구 관계자는 "전투의 치열함과 처절함을 연합군과 왜군 시각에서 각각 전달하고자 동상과 (전투도를 새긴)부조 등을 활용할 예정이며, 이 때문에 3국의 장군 동상을 설치하는 것"이라면서 "같은 취지로 당시 왜군을 몰아쳤던 권율과 양호 장군은 기마상으로, 성에 고립돼 고전을 면치 못하던 가토는 괴로운 표정의 좌상으로 설치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사업이 완료되면 해설사를 배치해 방문객에게 당시 역사적 상황과 의미를 설명할 것"이라면서 "오히려 전투의 참상을 사실적으로 전달해 애국심을 일깨우고 학습의 장으로 활용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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