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숨쉬는 캐릭터와 반전의 묘미…tvN '슬기로운 감빵생활'
주·조연 과감한 분량 분배로 지루함 줄이고 반전으로 강약 조절
(서울=연합뉴스) 이정현 기자 = 세상에서 가장 좁고 죽은 공간이지만 그 속의 인물들은 팔딱팔딱 살아 날뛴다.
감옥살이를 미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 속에 시작한 tvN 수목극 '슬기로운 감빵생활'이 생생한 캐릭터들과 반전의 묘미를 살려 비호감 낙인을 호감으로 바꿔나가고 있다.
◇ '뽕쟁이'부터 대기업 '예스맨'까지 캐릭터의 향연
모두 똑같은 회색 죄수복 차림이지만 캐릭터들을 헷갈리는 시청자는 없다.
주인공 김제혁(박해수 분)의 교도소 동기들도 메이저리거(가 될지 아직 모르는) 제혁 만큼이나 개성 강하고 사연도 가지각색인 덕분이다.
극 초반 배경이 된 구치소에서는 적당히 여우 같은 '현실 캐릭터' 제혁을 중심으로 '감빵 백과사전' 법자(김성철), 사기 7범의 명교수(정재성), 비리 교도관 조주임(성동일) 조연들이 신선함을 책임졌다.
그러다 제혁이 교도소로 옮기면서부터는 훨씬 더 개성 강한 캐릭터들이 등장, 주인공과 거의 대등한 분량을 나눠 책임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헤롱이' 한양(이규형)과 혀 짧은 '문래동 카이스트' 강철두(박호산) 콤비는 압권이다. 두 사람은 각각 전작 '비밀의 숲'과 '피고인'에서의 모습이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캐릭터에 완전히 녹아든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반가사 상태로 눈치 없이 굴다 늘 철두에게 얻어맞는 한양은 유대위(정해인)에게 직언하는 모습이나 과거 마약을 하다 연인과 엄마의 신고로 쇠고랑을 찬 모습에서 입체적인 면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밖에 대기업에서 '예스맨'으로 살다 회사 비리를 덤터기 쓴 고박사(정민성), 재소자들을 살뜰히 챙기는 반전 매력의 팽부장(정웅인), 장기수(최무성)과 장발장(강승윤) 등도 쳇바퀴 돌듯 늘 같은 환경의 교도소를 한층 풍성하게 만든다.
이제껏 감옥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는 주로 주인공의 탈옥을 그렸지만, '슬기로운 감빵생활'은 제목 그대로 수감생활이 소재라 자칫 지루해질 수 있다는 측면에서 주인공 혼자 극을 끌고 가도록 한 것보다 영리한 전략으로 판단된다.
동시에 제혁과 지호(정수정), 제혁을 돕는 교도관 준호(정경호)와 제혁의 여동생 제희(임화영) 간의 로맨스도 쉬어가는 볼거리다.
◇ 크고 작은 반전으로 속도 조절하는 블랙코미디
'슬기로운 감빵생활'은 신원호 PD의 대표작 '응답하라' 시리즈가 그랬듯 연출 자체는 트렌디하지만 최근 유행하는 다른 작품들처럼 몰아치는 전개는 없다. 오히려 느린 블랙코미디에 가깝다.
대신 늘어진다 싶을 때마다 찾아오는 반전의 묘미가 극의 속도와 강약을 조절한다. '응답하라' 시리즈의 남편 찾기만큼이나 반전들을 찾는 재미가 쏠쏠하다. 덕분에 회당 90분이라는 방송시간도 길게 느껴지지 않는다.
인심 좋은 듯 보였던 조주임이 알고 보니 비리 교도관이었다거나, 불같은 성격의 팽부장이 사실은 프랭크 시내트라의 '마이웨이'를 열창할 줄 아는 착한 교도관이었다는 스토리가 대표적이다. 고문관 같던 유대위 역시 정의로운 인물이었다.
또 제혁이 기대 이상의 영리함을 발휘해 감옥살이에 순조롭게 적응하는 듯 보일 때 다른 재소자 칼에 오른쪽 어깨를 찔린 장면은 순간 긴장감과 몰입도를 극대화했다. 좌완투수였던 제혁이 우완투수로 변신한 모습도 흐뭇한 반전이었다.
캐릭터들과 허를 찌르는 반전의 힘으로 시청자들은 그저 낯설기만 했던 교도소라는 공간과도 점점 친숙해(?)지고 있다.
수용자들이 목공 일을 하며 돈을 벌고 그 사이에서 기 싸움, 심지어 선거까지 벌어지는 모양이 외부 사회와 상당 부분 겹치는 것도 시청자의 적응을 돕는다. 회차가 진행될수록 범죄자 미화에 대한 우려보다는 각 캐릭터가 어떻게 살아남는지에 시청자의 관심도 쏠리고 있다.
시청률도 선전 중이다. '슬기로운 감빵생활'은 1회 시청률 4.6%(닐슨코리아 유료플랫폼)에서 꾸준히 상승세를 타 지난 20일 방송된 8회에서는 6.8%를 기록했다.
제작진은 21일 "이야기의 재배치에서 오는 극적인 반전과 카타르시스에 공감해주셔서 감사하다"며 중후반부 관전 포인트에 대해 "주인공부터 조연까지 다양한 인생 이야기가 더 깊이 있게 펼쳐진다. 교도소 배경의 특성상 만기 출소자가 생기거나 이감되는 인물, 새로운 인물의 등장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lis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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