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비' 양우석 감독 "다큐 아니고 상업영화로 봐주셨으면…"

입력 2017-12-15 09:36
수정 2017-12-15 09:53
'강철비' 양우석 감독 "다큐 아니고 상업영화로 봐주셨으면…"



(서울=연합뉴스) 조재영 기자 = 양우석(48) 감독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방대한 지식에 깜짝 놀라게 된다.

짧은 답변에서도 역사는 물론이고 철학, 시사, 군사 문제까지 순식간에 훑고 지나간다. 요즘 말로 '뇌섹남'(뇌가 섹시한 남자)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줄 만하다.

지난 11일 그의 신작 '강철비' 시사회 직후 열린 간담회에서는 '이 작품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책을 읽었느냐'는 질문이 나왔을 정도다. 그만큼 방대한 이야기를 140분이라는 긴 러닝타임 아래 지루할 틈 없이 녹여냈기 때문이다.

양 감독은 소위 '밀덕(밀리터리덕후)'이라 불리는 군사 마니아다. 2006년 북한의 1차 핵실험 이후 북핵 문제에 관심을 두기 시작해 기밀문서, 관련 서적 등을 모조리 찾아 읽어 거의 전문가가 다 됐다.

'강철비'도 한반도의 핵전쟁 시나리오를 소재로 한 첩보 액션 블록버스터다. 북한 내 쿠데타가 발생해 북한의 최고 권력자가 남한으로 내려오고, 핵전쟁 위기가 닥치자 북한 요원 엄철우(정우성)와 남한의 외교안보수석 곽철우(곽도원)가 공조해 전쟁을 막으려 한다는 내용이다.



양 감독의 전작 '변호인'과 비교했을 때, 결이 전혀 다르게 느껴지기도 한다. 14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양 감독은 "'강철비'도 '변호인'의 연장선에 있는 영화"라고 강조했다.

"'변호인' 속 송우석(송강호)은 비록 실존 인물이긴 하지만, 철저하게 자기 직업에 충실했던 사람입니다. 법에 근거해 먹고 사는 사람인데, 국가 권력이 법을 안 지키니까 항의한 것이죠. '강철비'의 곽철우는 외교안보수석으로서 대한민국의 안보를 지켜내는 게 직업입니다. 그 역시 대한민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시스템적으로 전쟁이 재발하지 않도록, 그 만의 방법을 선택한 것이죠."

'강철비'는 두 철우의 우정과 활약을 그린 '버디 무비'처럼 보이기도 한다. 철우라는 이름은 영화 제목 '강철비'에서 따왔다.

양 감독은 선우휘 작가가 1959년에 발표한 '단독강화'란 단편소설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했다. 전쟁에서 낙오된 인민군과 국군 병사가 자신의 처지와 입장을 잊고, 생존을 도모하다 최후를 맞는 이야기다. 그러나 영화 속 두 철우의 최종 목표는 '관계 맺기'가 아니라 서로를 이용한다는 점에서 버디 무비와는 다르다고 강조했다.

양 감독은 "이 영화가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이야기였으면 한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우리는 북한을 바라볼 때 정신 분열적인 간극이 있습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고 노래하면서 북한을 '적'으로 간주하죠. 그런 상황에서 북한을 과소평가하거나 혹은 너무 과민반응하거나, 아니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는 3가지 시각이 혼재돼있습니다. 저는 우리 사회의 이런 심리적 방어기제를 깨고, 북한을 냉철하게 바라봤으면 좋겠다는 취지에서 영화를 기획했습니다."

'강철비'는 한반도 핵 문제 해결을 위한 4가지 방안, 즉 평화적 비핵화, 전쟁, 현상유지, 핵 균형 가운데 하나를 결말로 다룬다. 논란의 소지가 있을 법하다.

양 감독은 "극 중 곽철우가 한국의 이익 극대화라는 관점에서 내린 결론"이라며 "상업영화의 틀 속에서 봤으면 좋겠고, 영화적 상상력이 현실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난센스"라고 말했다.

이 작품은 정우성과 곽도원의 찰떡 호흡으로도 화제가 됐다.

양 감독은 "엄철우는 인생에 대한 휑한 슬픔과 그런 눈망울을 지닌 인물로 묘사하고 싶었다"면서 "TV 드라마 '빠담빠담'을 보니 정우성이 그런 모습을 하고 있었다"고 캐스팅 이유를 밝혔다. 이어 "곽철우의 경우 소년처럼 맑은 눈을 지녔지만, 자기 직업에 투철하고 지치지 않는 인물로 그리고 싶었다"면서 "그런 점에서 곽도원씨가 제격이었다"고 말했다.

양 감독은 차기작으로 가난과 기업가 정신 등을 을 소재로 한 작품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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